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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0

오늘은 공사다망 했다.

by 서 련 201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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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아이와 함께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집 뒷편에 있는 현충탑 아래 조그만 야산에만 다녀오자고 가볍게 나갔었는데
"엄마, 좀 더 큰 산이 없을까? 산이 좁아서 시시해." 라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내가 늘 오르내리던 조금 더 큰 산으로 데려갔다.

"엄마, 여긴 생각보다 너무 가파라, 힘들어."
"조금만 올라가면 운동기구가 많으니까 그거 하면서 좀 쉬자."
아이 등을 떠밀며 힘들게 올라간 그 곳엔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산에 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마치 우리가 산에 오른 것이 아니라 시내 한 복판에 서있는 것 처럼 말이다.

"엄마, 나는 자연이 참 좋아."
"자연이 좋아?"
"응"

자연이 좋다는 아이의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아마도 내 의식 속엔 산이 좋다라던가 나무가 좋다라던가 구름이 좋다라던가 하는
그런 구체적인 사물이 좋다라는 말이 튀어 나와야 자연스럽게 생각되어지는 고정관념이 있었나보다.
불어오는 바람을 두팔로 맞으며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다소 유치하고 다소 뻔하고 간혹 민망한 표현들도 있었지만 오늘만은 왠지 교정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이게 아니고 저거야. 저건 이게 아니고 그거라니까.'
무수히 많은 날들을 무수히 많은 교정을 받으며 우리는 사회화란 과정을 거친다.
'너도 이렇게 나도 이렇게 우리 모두 이렇게.... 그렇게는 안되고 꼭 이렇게....'
깎아 놓은 밤톨처럼 고만고만하게 모두들 평준화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요즘들어 상향 평준화란 말을 자주들 하시나본데 상향이든 하향이든 간에 
개인차와 개성을 간과해버리는 평준화는 그저 평준화일 뿐이다.


"엄마, 더 이상 못 가겠어."
힘들어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는 아이의 말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발 길을 멈춘 그 곳은 집과 한 시간쯤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이다.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고 오직 존재하는 것은 먼지가 날리도록 걷는 사람들 뿐이었다.

"엄마,아빠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할까?"
"아빠가 천안에서 왔을까?"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천안에서는 애저녁에 출발을 했고 20분 후면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진아, 아빠가 데리러 온데."
"앗싸아~ 나이쓰~"
그렇게 3시간 동안의 산행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1시간 후 우린 남사에 있었다.

고추가루가 떨어져서 시댁에 들렸었는데 아버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님을 기다리는 동안 다육이 화분과 화분을 올려둔 유리장을 오른쪽 베란다에서 햇볕이 잘 드는 왼쪽 베란다로 옮겼다.

한 때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집에 햇볕이 없으면 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다육식물을 욕심껏 들여 놓은 적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모양새가 일그러지는 다육식물을 보면서 내가 저지른 행동을 후회 했었지.
다행히 하루 종일 볕이 사납게 드는 시댁 베란다가 있어서 2년전에 다육이 화분을 모두 이 곳으로 옮겼다.

오종종하게 들여다 놓은 다육식물을 보면서 아버님은
"이건 물을 자주 줘야 하는 거라니? 물 자주 줘야 하는 거면 나는 성가셔서 못 키운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아뇨, 아버님이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돼요. 물은 거의 안 줘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도 아버님은 물을 안줘도 그렇게 잘 사는 다육식물이 정말 신기하신 모양이다.

베란다 청소가 끝났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저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냉장고를 뒤져 고추가루를 꺼냈다.

그리고 광에서 고구마 한 봉지를 꺼냈고, 텃밭에서는 대파,상추,아욱을 각각 뜯어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타리에 널려있는 애호박도 서너개 따서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밥이 다 되어질 무렵 시댁으로 전화를 했다.
"아버님, 고추가루랑 고구마 좀 가져 왔어요."
"냉장고에 호박은 왜 안가져 갔냐?"
"밖에서 4개나 따서 넣었어요."

전화를 하면서도 좀 찔렸다. 고추가루가 조금이 아니고 한 바켓스는 족히 되고도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 말씀이 없으신 걸로 봐서는 일단 안심이고 무사통과였다.
형님들은 꼭 아버님의 허락을 받고 걷어가지만 나는 오늘처럼 허락 대신 통보를 할 때가 많다.

얼굴 자주 디민다는 이유로 아버님이 심어놓은 농작물은 다 내꺼다.
'잘 키운 며느리 하나 열 도둑 부럽지 않아요~!'

이렇게 오늘은 공사가 다망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추가루를 너무 많이 퍼온 것 같단 말씀이야??
아무래도 토해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에잇~ 대충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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