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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0

나른한 오후 햇살

by 서 련 201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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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아이랑 병원에 갔었다.목감기가 심해서 이틀째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어제보다 많이 나아져서 오늘은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겠네요."
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진찰하는 내내 굳어 있던 아이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약을 이틀치 처방해 드릴테니 먹어보고 괜찮으면 오지 않아도 됩니다."

약국에 들러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에게 따뜻한 옥수수차 한 잔을 건냈다.
"엄마,내일은 학교에 가야 돼?"
"그건 왜?"
"내일도 안가면 안 돼?"
"글쎄,,, 의사선생님이 너 많이 나아져서 이젠 병원에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그렇지만...."
"그리고 학교를 그렇게 자주 빠지면 될까?"
"....."

아이의 얼굴 빛이 좋지 않았다.
며칠 전 짝이랑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집에 와서는 대성통곡을 했었는데
그 일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건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학교 가기 싫은 건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걱정을 놓아 버렸다. 


20100806/봉화,소천



점심을 먹고 아이에게 약을 먹인 후 고양이 옥순이에게 집을 맡겨두고 나는 산에 갔었다.
날씨가 낮부터 풀린다는 일기예보가 오늘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내내 얼마나 땀이 나던지 아침까지 그렇게 추웠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서둘러 운동을 끝내고 아픈 아이가 있는 집으로 빨리 돌아 가야지 하는 마음 때문에 계속 뛰었던 탓도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고양이를 꼭 끌어 안고 자고 있었다.
평소 고양이는 아이가 안으면 질색하고 싫어 했었는데
오늘은 아이가 아프다는 걸 저도 알고 있다는 건지
그래서 위로를 해 주려고 했던 건지 꼼짝 않고 아이곁을 지키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나른하게 들어왔다.
고양이는 그제사 창문으로 뛰어 올라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녀석 점점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

나는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얼굴과 나른한 오후 햇살 너머 먼 곳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 보며 조금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햇살이 너무 나른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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