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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

고양이와 바구니 그리고...

by 서 련 2011.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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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아빠가 퇴근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시금치 한보따리.
아침에 김밥을 싸려고 보니 속재료로 넣을 푸른 채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애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퇴근하는 길에 시금치 한단만 사오라고 했더니
아는 사람 텃밭에 들러서 시금치를 뽑아온 것이었다.

마구잡이로 뽑아 비닐봉지에 담은 것이라 바로 흙을 털고 다듬어 놓지 않으면 쉽게 상할 것 같아서
시금치 다듬는 걸 내일로 미룰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밤중의 시금치 다듬기...


우리집엔 항상 바구니나 다라를 꺼내 놓으면 제일먼저 달려오는 놈이 하나 있다.

우리집 구박덩어리 옥순양.
요즘은 털이 너무 빠져서 롤테이프로 이불이며 옷가지에 붙은 털을 떼느라 아주그냥 허리가 휜다.
그래서 한 번 야단 칠 거 두 번 야단 치는 경향이 있다.

창고에서 바구니만 달랑 꺼내려다가 우리집 구박뎅이 옥순양때문에 스텐레스 다라 하나를 더 꺼내서 바닥에 놓아 두었다.
바구니 꺼내 놨다고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고양이는 어느새 빨간 바구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옥순이, 오늘은 그게 마음에 드셔?"



좋다 싫다 말도 없이 귀만 움직일 뿐이다.


"그래, 움직이면 털 날리니까 그렇게 가만히 있어라."

스텐 다라에 다듬어진 시금치가 한가득 담겨졌을때 고양이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구니에 선 채로 앞발로 무언가를 툭툭 건드리더니...





나중엔 아주그냥 시금치를 다 파헤칠 기세다.


"야~야~야~! 이 시키가! 가만히 못 있어? 시금치에 털이 다 묻잖아!"


 



나는 다만... 야단 한 번 쳤을 뿐인데 고양이는 다시 바구니로 기어 들어가 귀를 척 늘어뜨리고 앉았다.

에이 소심한 고양이...
야단 한 번 맞았다고 고새 삐쳐서 입이 댓발은 나왔다.




그나저나 내가 또 너무했나?

새초롬해진 녀석의 표정에 나는 또 마음이 약해졌다.



그런데... 바닥에... 저건 뭐지?


자세히 들여다 보니...






시금치 뜯어 먹다가 재수 없게 죽을 자리로 걸려든 달팽이군 되시겠다.

그런데...
누가 달팽이가 느리다고 했던가!





사진 몇장 찍자니까 꼴에 뺀답시고 요리조리 사정없이 움직여 주신다.




그래서! 훤~한 대낮에 사진을 찍어 주셨다. 음하하~






시금치 이파리 위를 쥐도새도 모르게 초고속 질주하시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수명을 알 수 없는 달팽이군!


달려! 달려! 
내일 죽을지언정 달팽이군의 질주본능은 오늘도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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