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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7

취학 통지서

by 서 련 2007.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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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통지서
조회(353)
Memory of the day 2007/01/12 (금)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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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꽁꽁 얼어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는 미지근한 오후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책갈피를 넘기다 말고 졸던 나는
누군가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누구야 또...'
나는 성가신 방문판매 사원이거나 모 종교단체에서 전도를 목적으로 나온 사람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때는 그냥 대답 않고 조용히 하던 일 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나는 다시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더 요란하게 들리더니 누군가가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외침 속에서 문득 내 아이의 이름 석자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이불속을 빠져 나와 현관문 앞에 섰다.
신발장 중간부분에 가로로 길게 붙어 있는 붙박이 거울속으로 내 모습이 비춰졌다.
허리까지 치렁치렁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답답해서 얼마전에 어깨선 위까지 잘라버렸었다.
그 어정쩡한 머리카락이 이불과 부딪기면서 한껏 부풀어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이대로 현관문을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세요?"
라고 외치면서 나는 안방으로 재빠르게 들어가 화장대에 올려진 머리띠로 덤불같은 머리카락을 대충 수습하고
현관앞에 다시 서서는 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동사무소에서 나왔는데 여기 이예진 어린이 집 맞나요?"
"네~ 잠깐만요"
 
현관문을 열자 손에 서류뭉치를 든 짤막한 두 여인이
우리아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재차 확인을 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왼편에 있던 짤막한 여인이 A4용지에 작은 종이가 덧붙은 서류를 건네 주었다.
"취학통지서 나왔어요"
동사무소 직원으로부터 서류를 건네받은 나는 그 두 사람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후 현관문을 닫았다.
32절지크기의 작은 종이는 취학통지서였고 A4용지는 2차 홍역 예방접종 통지서였다.
 
취학 통지서
예비 소집일:1월 22일.
입학 일시: 3월 2일.
 
'드디어 학부형이 되는 구나!'
현관앞에 석고상 처럼 그대로 서서 나는 생각했다.
몸이 이상해서 찾아 간 산부인과에서 임신이란 소식을 들었던 때,
그 날로부터시작해서 남산만한 배를 안고 다니던 시절,
아이가 꺼꾸로 있어서 수술을 해야만 했던 날,
그 아이를 잘 키워 볼거라고 시작한 모유수유가 견딜수 없이 고통스러워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첫달,
아이가 보행기를 힘차게 밀고 다니던 백일,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첫돌, 기저귀를 때던 두돌,
세돌이 넘도록 침묵하던 아이, 그 말없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다니며 눈물 짓던 숱한 날들,
짧은 순간 그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내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초조가 내 숨통을 조이고 있는 요즘이다.
엄청나게 떨린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에 한가닥 희망을 품어 본다.
그래,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보자, 그래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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