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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1

바늘을 삼킨 고양이 그리고...

by 서 련 201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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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저녁무렵...
오랫만에 짬을 내어 연필을 잡았다.
머리는 무겁고 손 끝은 무뎠다.
그렇게 한참을 소란스런 마음을 안고 눈을 따라그리고 있었을까?
어느 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딸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리고 있었다.
순간, 조금전까지 소란스럽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고요함이 내려 앉았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아련한 바람마저 느껴질때,
그 적요한 순간을 순식간에 산산히 박살내버린건 남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늘을 삼켜버린 고양이였다.

 텔레비젼을 보던 남편은 옥순이가 바늘을 삼켰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내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아빠의 지나친 흥분에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지금 당장 고양이가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평소 헝겁으로 인형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반짓고리를 꺼내 놓고 자주 바느질을 했다.
한 번은 청소할 때 바늘이 방바닥에 굴러다녀서
바느질을 다하고나면 바늘은 항상 바늘꽂이에 꽂아두라고 주의를 준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급기야 고양이가 아이가 함부로 버려둔 바늘을 삼키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제 고양이가 죽는건가?
아득한 마음으로 잡고 있던 H연필을 놓고는 다시 2B 연필을 집어 들고 연필심을 뾰족하게 깎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없어지면 아이가 상심이 클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연필심을 뾰족하게 깎고 또 깎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이가 평소에 쓰는 바늘은 3센티 정도의 짧은 바늘이었다.
그래서 잘하면 고양이변에 섞여 나올지도 모르고
어쩌면 고양이는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기좋게 비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으므로 날이 밝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뾰족하게 깎은 2B연필의 각을 세워 속눈썹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고양이가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치며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걸 보면서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남편은 고양이가 삼킨 것이 바늘이었나? 바늘이 맞나?
분명 바늘이었는데 이상하다? 는 말을 자꾸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속눈썹 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내 등뒤에다 대고
고양이가 바늘을 삼켰다는데도 당신은 걱정도 되질 않냐는 원망 섞인 소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는 말이었을 텐데 나는 왜 그 소리가 비아냥 거리는 소리로 들렸을까?

그 소릴 듣는 순간 나는 나도 통제할수 없을 정도로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침착하지 못하냐고, 만약의 경우 자기때문에
자신이 끔찍하게 아끼는 고양이가 죽은 줄 알면 아이는 평생을 그 죄책감때문에 얼마나 괴로워 하겠냐고
지금 당장 고양이가 죽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그리고 언제부터 당신이 그렇게 고양이를 아꼈냐고
매일 밥을 주고 하루에 한 번 고양이 똥을 치우고 일주일에 한번 고양이 목욕을 시키는 건 나라고
언제 방바닥에 흩어진 고양이 모래 한 번 쓸어 준적이 있냐고...

그 순간  바늘을 삼킨 고양이가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남편과 내 사이를 도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저것 보라구 잘만 걸어다니는 구만...
이상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던 수술을 하던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꼭 그렇게 내 탓 하면서 면박을 줘야겠냐고....

화는 점점더 솟구쳐 올라 결국은 남편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게 못마땅한 모양이라는 곡해까지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더 이상 연필을 잡고 있을 수가 없어서 들고 있던 연필을 화판에 집어 던졌다.
연필을 집어 던지고 보니 무릎위에 올리고 있던 화판도 꼴이 보기 싫어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집어 던지지는 못하고 책상위에 아무렇게 올려 놓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씽크대 앞으로 갔다.
설거지통에 밥풀과 반찬 찌꺼기를 뒤집어쓴 그릇들이 탑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저녁 설거지는 남편 몫으로 정해진 유일한 집안일이다.
어찌된 일인지 남편은 며칠째 저녁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며칠째 참고 있던 불만이 더해지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설거지는 왜 안하냐고 버럭 소릴 질렀다.

그릇을 거칠게 부딪혀가며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내가 언제 화를 냈던가 싶게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리고는 또 다시 화판을 무릎에 올려 놓고 연필을 잡았다.
그렇게 한 바탕 하려고 마음이 그렇게 소란스러웠을까?

어제 아침,
다행히 고양이는 삼킨 바늘을 배변으로 무사히 내 놓았다.
그리고 남편은 꼬박꼬박 저녁 설거지를 하고 하루에 한 번 고양이 화장실도 치우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 날카로운 바늘이 어떻게 그렇게 좁은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며
그 뾰족한 바늘이 어떻게 그 꼬불꼬불한 내장을 무사히 지나 변에 묻어 나올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할 밖에 더는 아무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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