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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7

맥주잔

by 서 련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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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day 2007/12/14 (금) 16:48





종일 설거지통에 쌓아둔 그릇을 좀 전에 말끔히 씻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면 간혹 그릇을 깨는 일이 있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집안 일을 하기 싫을 때 설거지를 하면 꼭 뭘 하나 깨먹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오늘도 정확히 적중하는 나의 징크스.
일전엔 큼직한 내열냄비 뚜껑을 하나 왕창 해먹었는데...
오늘은 남편이 애용하는 맥주잔을 해먹었다.
집엔 저것보다 더 고급스런 맥주잔이 여러 개 있는데 남편은 유독 저 멋대가리 없는 유리잔을 사랑한다.
저 잔이 아니면 맥주 마시는 걸 포기 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는 235ml의 밋밋한 맥주잔.
폭이 좁아 씻기도 불편하고 심심하면 손아귀에서 탈출하는 235ml의 뺀질이 맥주잔.
뺀질거렸으면 끝까지 뺀질거릴 일이지 맥없이 풀썩풀썩 잘도 깨지는 235ml의 연약한 맥주잔.
주류회사에서 날로(공짜로) 남품업계에 제공된다는 관계로 어디서 잘 팔지도 않는 235ml의 비품 맥주잔.
맥주잔의 짧디짧은 비품인생이 오늘로서 쫑이 났다.
그 인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의 손에서 확실하게 쫑이 났다.
이젠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 갈 일만 남았다.
이로써 세상을 하직하는 모든 비품인생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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