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은 낙엽처럼

생을 향한 완벽한 긍정만이 정녕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by 서 련 2007. 9. 22.
728x90
반응형
생(生)을 향한 완벽한 긍정만이 정녕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서 련이 말하는 생(生)이란?
"존재는 곧 생(生)이며, 생은 또한 생성(生成)이고, 존재자는 끊임없이 생성하는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을때 생(生)은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 즉, 끊임 없는 생성의 과정을 의미한다.
 
완벽한 긍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부정적인 것들,
그러니까 비도덕적이고, 비규범적이고, 비합법적인 모든 것들까지도 긍정하라는 말일까?
자신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 즉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이상, 가치)가 사회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러니까 도덕적이고(혹은 윤리적이고), 규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 추구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로 완벽한 긍정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즉, 완벽한 긍정이란 '모든 규범적이고,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반드시 책임을 수반하는 자유를 말한다.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만하고 무조건 내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식의 방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건 모두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자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나는 나, 그러니까 내 이름 앞에 "누구의 무엇"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특질과 방식으로 모든 현상을 사유하고 그 사유가 내 안으로 녹아 흐를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바로 자유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를테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 즉, "누구의 그 무엇"일 때가 아닌 "나만의 순수한 무엇"이 되어 본질 너머에 있는 자기 실존을 인식하는 과정 즉,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나만의 여유! 본질적인 순수!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자유의 개념 되겠다. 그런 연유에서 자유는 누리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
 
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 간다. 위에서 '누구의 무엇'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은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할 때 자유롭다.'라고 한다고 해서 '누구의 무엇'이길 거부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그건 좀 많이, 아니 아주 많이 곤란하다. 왜냐하면 '누구의 무엇'이라는 수식어가 떨어진다는 말은 곧 관계와의 절연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게 돼버리면 나는(혹은 인간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기때문이다. 행복이란, 관계의 늪에서 허우적거릴때만 찾아오는(느낄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관계라 함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닌,  적절한 관계를 뜻하는 것이 겠고. (적절한 관계! 두말하고 잔소리 세말하면 주댕이 아프다.)
 
정리하면 '생을 향한 완벽한 긍정만이 정녕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일축 될 수 있겠다.
"끊임 없이 생성하는 자로서 긍정적인 자기강화를 추구할 때 나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자, 혹은 실존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  내게는 자유라고 불리는 "순수"인 것이다."
 
-2007/10 서 련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