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은 낙엽처럼/2008

발크레시티

by 서 련 2008. 1. 8.
728x90
반응형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08 (화) 20:58




대형 롤 화장지의 심지 4개를 이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하나 더 얹어 몸통을 만든
다음  치약 상자 두개로 팔을 만들고 풍선으로 머리를 만든 로보트가 있었다.
아이가 재활용 쓰레기로 손수 만든 로보트는 '발크레시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발크레시티는 투명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여 놓아 옮길 때마다 팔다리가 한번씩 떨어져 나갔다.
그럴때마다 아이는
"걱정마, 발크레시티, 내가 안아프게 붙여 줄게." 하며 투명테이프를 찾아 정성껏 붙여 놓는 것이다.
주산공부를 하러 학교에 갈때에도, 논술공부를 하러 학교에 갈때에도,
아이는 "엄마, 발크레시티 버리면 안 돼?" 하며 내게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돌아 올 동안 주로 청소를 하는데
'발크레시티'라는 너덜너덜한 로보트가 자주 내 발길에 채이곤 했다.
아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냥 옆으로 치워놓기만 하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그 놈이 영 못마땅했다.
 
"이 넘의 발꼬락시티를..."
맨 처음 발크레시티가 발길에 채일 때 내 입에서 불쑥 튀어 나온 말이다.
그때부터 '발크레시티'는 '발꼬락시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며칠 내 발길에 채이며 천덕꾸러기 생활을 하던 '발크레시티'가 오늘 드디어 재활용 봉투에 담겨졌다.
 
아이한테 정리 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죄목을 씌워 그 벌로
눈에 가시였던 너덜너덜한 발꼬락시티를 분해해서 재활용 봉투에 넣어버린 것이다.
적법을 가장한 다소 치졸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그러고 난 후 아이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내가 만든 발꼬락시티 로봇을 엄마가 재활용 해 버렸다. 불쌍한 발꼬락시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너덜너덜한 발꼬락시티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속이 다 시원하다.
 
아가... 일주일 동안이면 이 엄마가 그 너덜너덜한 걸 엄청 많이 참아준 거란다.
더 이상 이 엄마의 권위에 도전하지 마라.
이 집에선 엄마가 법이란다. ㅡㅡ;;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