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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

고삐

by 서 련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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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송아지의 코에 코뚜레가 꿰어졌을까?
소라는 동물을 밭갈이의 도구로 이용하면서부터 일텐데...
파란색 코뚜레를 보니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송아지 코에 코뚜레가 꿰지기 시작한 시기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정확한 시기 대신 "아주 오래 전부터"라는 부사구를 활용하기로 하겠다.
 
이 대목에서 왜? 라고
 꼬장꼬장하게 묻는 이가 있다면
"아직은 그렇게 못 견딜 정도로 궁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 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부터 송아지는 코뚜레를 꿰야만 했다.
코뚜레를 단단히 얽어 고삐를 메는 그 순간부터 송아지는 얌전한 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얌전한 소는, 아니 얌전해야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소는 인간이 고삐를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바로 이 "고삐"라는 도구를 착안着眼한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동물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었고
그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통제의 수단으로써 손색이 없는 고삐는
동물의 행동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의 행동 전반에 걸쳐 그 사용 범위를 확대시켜 왔다.
 
통제의 수단으로서 확대 해석된 고삐의 예를 들어보자면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은머리 미국인인 에리카 김의 전자족쇄가 있겠고
논란끝에 시행되는 성폭행범죄자들의 전자발찌도 있을 것이다.
 

그렇듯 인간의 동물에 대한 지배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다를바 없어 보인다.
 
만약 '인간이 인간을 고삐로 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배에 대한 욕망때문이다' 라는
다소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 
역으로 그런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서로가 서로를 얽고 옥죄는 고삐가 될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인간은 고삐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속의 이 녀석처럼 말이다.

2008년 어느 날 / 서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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