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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8

배고파...

by 서 련 2008.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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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딸내미가 찜해 놓은 피자 두 조각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피자는 어제 저녁 늦은 귀가가 미안했던 애 아빠가 두 모녀에게 건네는 뇌물이었는데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피자를 한쪽만 먹였고 오늘, 아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간밤에 한쪽 밖에 먹지 못한 애틋한 피자를 찾았다. 먹성 좋게 피자 세쪽을 아침으로 우겨 넣고 학교에 갔던 아이가 돌아와서 남아있던 피자를 찾았지만 피자는 이미! 벌써! 나의 식도를 타고 넘어가 나의 위장속에서 소화액을 듬뿍 받아 분해되고 나의 대장속으로 빨려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믿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분명 냉장고 속의 피자의 행방을 까맣게 잊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의 그 어이없는 믿음은 정말 어이없게 빗나가고 말았다. 아이는 집요하게 피자 두쪽의 행방을  추적했고 기어이 나로부터 "내가 먹었어."하는 자백을 받아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저녁엔 아이에게 속죄의 뜻으로 얼추 30센티가 넘는 그것도 알이 심~하게 들어찬  수조기를 한마리도 아니고 두마리 씩이나 집어 넣고 매운탕을 끓여 줬다.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 차려 놓고 나는 그 풍성한 식탁을 뒤로하고 운동을 하러 나가야 했다.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을 뛰다 걷다 하는 동안 식탁위의 수조기 두마리가 내 입속으로 파닥거리고 뛰어드는 것 같았다.

' 그때 군침을 꾀나 흘렸는데 다이어트에 조금 도움이 되려나?^^'(싱겁긴...)

한 시간의 운동을 끝내고 땀이 범벅이 되어 들어 온 나는 바로 식탁 앞으로 달려갔다. 조금전까지 내 입속으로 파닥거리며 뛰어 들 것 만 같았던 수조기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수조기는 꼬리 지느러미 두개만 달랑 남기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낼 먹게 쬠만 남겨 두지...ㅜ.ㅜ'

어쩜 부녀가 그렇게 세트로 얄미운지 모르겠다. 나는 아쉬운 대로 추석때 선물로 들어온 싸구려 브랜디를 스트레이트 잔으로 딱 한 잔 들이켰다. 크~ 식도를 태울 듯이 넘어가는 브랜디의 그 갸륵한 향기라니! 허기를 잊어 보려고 마셨던 브랜디의 향기가 갸륵할지언정 이 시간 쯤 찾아 오는 이 죽일 놈의 허기는 도대체가 감당하기 어렵다.

늘 이 죽일 놈의 허기때문에 다이어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곤 했는데... 오늘도 나는 이 죽일 놈의 허기 앞에서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아주 단순한 물음을 아주 복잡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안 먹으면 되는데 먹고 싶으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안 먹고 싶은데... 먹으면 안 되는데... 먹으면 한 시간의 운동이 물 거품이 되는데...'
하지만 저 죽일 놈의 허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쥬 플리즈~ 먹어 줄래?"
아! 먹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나는 천정만 보고 대충 냉수만 들이켜 보지만 저 죽일 놈의 허기는 당초에 불감당이다.

"에이 쓰벌... 졸라 배고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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