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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고양이와 석화나무)

by 서 련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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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요즘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창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봄이 되자 나의 그녀는 겨울동안 굳게 닫아 놓았던 안쪽의 창문을 한쪽으로 포개 놓고
투명한 바깥 창을 통해 놀이터를 바라보곤 한다.
그 곳엔 지난 해 목이 뚝 잘려버린 백합나무에서 종이학 같이 생긴 연두색 이파리들이 햇볕을 받으며 파닥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나의 그녀는 안쪽 창문을 한쪽으로 포개놓고는 바깥창을 통해 놀이터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얼른 창틀로 뛰어 올라가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백합나무 여린잎들이 파닥거린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생기 잃은 눈으로 백합나무만 바라보던 그녀, 
그녀가 다시 숨을 들이쉬고 집안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나의 그녀가 집안일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창틀에서 길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깜빡 잠이들었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그녀처럼 따스하게 내 하얀 털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꿈속까지 전해져온다.




 #2

태양이 한뼘정도 서쪽으로 움직였을까? 나의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그녀는 며칠전 시장에서 사온 석화나무 화분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어느 새 나무에는 꽃이 하나 피어 있었다.



#3

이젠 석화나무에게 오후 햇볕을 양보할 시간이라며
나의 그녀가 나의 엉덩이를 창귀퉁이로 쓱 밀치더니 그 자리에 석화나무 화분을 올려 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그녀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래도 돼?



#4


정말 나한테 이래도 돼?
이깟 꽃나무가 뭐 길래 나한테 이러냐구!



#5

언제나 나만을 바라보며 나만을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이젠 마음이 변한건가?
그런거였어?

저 깟 하찮은 꽃나무때문에...


 

#6

울고싶어.
울어버릴거야!
큰 소리로 울어 버릴거야!
 
아~~~





하~~~




#7

하~~암~~~
어떻게 나는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품을 할 수 있을까 그래.
참 못났다.



#8

그런데 석화나무꽃이라고 했나?
다시 보니 꽃이 예쁘긴 하다.

가만 있어봐, 예쁜만큼 향기도 좋겠지?



#9


향기가 없어.

그럼 향기도 없는 꽃에게 내가 밀린 거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더니...

씁쓸~ 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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