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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에세이

무지개 잡채 만들기 - "빨주노초 갈미하"

by 서 련 201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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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이 떨어져서 마트에 갔다가 표고버섯이 먹음직스럽게 보이길래
한 팩을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것으로 딱히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생각도 없이.
다분히 충동적이다.
충동구매? 다시 꺼내 놓을까? 하다가
마트 안을 다 돌아볼때까지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생각 나지 않으면
그때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아도  되지 싶어 표고버섯을 장바구니에 그대로 넣고
그것이 마냥 내 것인양 마트 여기저기를 해찰거리고 다녔다.

거의 한바퀴 정도 돌아봤을까?
당면이 눈에 띄었다.
당면은 아주 착한 가격표를 달고

"저를 사세요. 저를, 만약 저를 사시지 않는다면 백만년 동안 후회를 할거예요."하며
신화속, 님프처럼 선과 악의 경계에 서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백만년동안 후회 할순 없지.'

500g짜리 당면 한봉지를 집어 장바구니에 넣다 표고버섯이랑 눈이 맞았다.

'그래, 너는 잡채에 들어가면 되겠구나.'

그리하여 결정된 엇저녁의 메뉴는 "7색잡채"


-파프리카, 주황-당근, 노랑-계란 노른자, 초록-청오이, 갈색-표고버섯, 미색-양파, 하양-계란흰자.


청오이: 3등분하여 돌려깎기를 한 후 채썰어서 소금뿌려 볶는다.
당근,양파,파프리카: 채썰어 소금뿌려 볶는다.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후 각각 소금으로 밑간을 한 후 지단을 부쳐내어 충분히 식힌다음 채썬다.
표고버섯: 기둥은 떼어내고 갓만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채썬후 간장,설탕,마늘로 밑간을 해둔다.
              버섯에 밑간이 베어들면 달궈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달달 볶는다.

잡채에 들어가는 일곱가지 색깔의 재료가 준비되면 당면을 삶는다.

끓는 물에 당면을 넣고 6분정도 삶은 후 찬물에 2-3번 헹군다. 라고 당면 봉지에 그렇게 써 있다.



당면 봉지에 써진 방법대로 삶아진 오동동한 당면

(500g 한봉지를 다 삶으면 너무 많으니까 반만 삶았다. 250g 정도... 큰 접시로 두접시는 충분히 나온다.)


당면 사리를 가열하지 않은 후라이팬에 넣고, 설탕, 간장,후추, 참기름의 순서 대로 넣고 무친다.

설탕은 입자가 작아서 소금이나 간장을 넣기전에 넣어야 재료에 흡수가 빠르다. 
그러면 설탕을 조금만 넣어도 단맛을 충분히 낼수 있다는 "설탕부인의 조언"을 상기하자.

잡채에 간이 맞다 싶으면 후라이팬을 가스불에 올리고 볶아준다.



잡채에 윤기가 돌도록.
요기까지는 꼬들꼬들한 잡채를 원하시는 분,

정말 부드러운 잡채를 원하시는 분은
윤기나게 볶은 당면에 물을 조금 붓고 볶다가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이면 된다.

당면이 다 볶아졌다면 앞서 만들어둔 "빨주노초 갈미하" 일곱가지 색깔의 고명을 넣고
잘 버무려 통깨로 마무리하면
"백만년동안 후회하지 않을" 잡채가 완성된다.





500g 한봉지를 다 삶으면 너무 많으니까 반만 삶았었다.
250g 정도... 큰 접시로 두접시는 충분히 나오는 양이다. 
저녁에 만들었으니까 아침까지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는데...

오늘 아침, 후라이팬 뚜껑을 열어보니 잡채에 당면은 없고 고명만 질비하다.
남편이 또 몰래 야식타임을 가졌었나보다.
그럴줄 알았으면 잡채를 후라이팬이 그대로 두지 말고
밀패용기에 넣어서 냉장고 깊숙한 곳에다 꽁꽁 숨겨 놓는 건데 그랬다.

사실, 저녁 때 딸아이가 잡채당면을  더 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주지 않았다.
잡채는 칼로리가 높아서 저녁때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내일아침에 먹으라고 했었다.
그랬었는데....

"엄마, 잡채에 왜 내가 좋아하는 당면이 없어?"

"아빠가 다 먹었어."

"그걸 다?"

울상이 된 딸내미. 정말 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 니가 좋아하는 파프리카도 있고, 계란도 있고, 당근도 있네?"
하면서 파프리카와 당근과 계란 채를 딸아이 밥그릇위에 하나씩 올려줬다.

내가 밥위에 올려준 파프리카와 당근과 계란을 먹으면서 
아빠는 내 것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하마터면 마시려고 한모금 입에 물고 있던 커피를 딸아이 얼굴에 뿜을뻔 했다.

"이따가 잡채 만들어 놓을테니까 학교 갔다와서 먹으면 되잖아, 알았지?"
"그럼 당면 많이 줘야 돼?"
"그래, 알았어."

당면 많이 준다는 말에 기분이 괜찮아진 딸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잡채가 그렇게 맛있었나?
하긴... 칼로리때문에 겁이 나서 잡채라는 음식을 아예 만들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가물에 콩나듯 먹는 음식은 늘 그렇게 간절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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