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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

고구마, 새 삶을 시작하다.

by 서 련 201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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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 고구마 하나를 빈어항에 색돌을 깔고 앉혀 두었었다.
고구마는 길쭉하게 잘 뻗은 다른 호박 고구마들 사이에서 유난히 동그랬다.
쪄서 먹기엔 왠지 맛이 없을 것 같아 따로 빼 놓았었는데
어쩌다보니 냉장고 야채칸을 벗어나 어항 속에 들어앉은 팔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달쯤 지났을까?
고구마가 이젠 싹을 틔울때도 되었다 싶었는데 어항속 고구마는 여전히 싹을 틔우지 않았다.

고구마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썩어가는 것일까?
한 날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었다.
그랬더니 분홍 색돌 밑으로 고구마 뿌리가 촘촘히 얽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저도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우고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의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색돌에 뿌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조그맣고 뾰족한 싹을 틔우니 말이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가 있었던 탓일까?
조그맣고 뾰족하던 빨간 싹은 하루가 다르게 잎을 피워 올렸고 
이젠 서서히 줄기도 올리기 시작했다.

고구마가 부지런히 줄기를 올려 덩쿨을 만드는 것은 이젠 시간문제인듯 싶다.
시간에게 앞날을 맡겨놓고 여유로워도 좋은 만큼 고구마는 지난 두 달간 싹을 틔우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싹을 틔우려면 먼저 뿌리부터 튼튼하게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뿌리부터 튼튼하게 내려 놓아야 싹도 줄기도 무성하게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줄기를 올리고 있는 똥자루같은 고구마에게 물을 주다 문득 깨닫는다.

아무리 걸어도 올라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지만 뛸 수 없다고 걷는 것까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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