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며칠 전부터 열무김치가 떨어져 간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말엔 무슨 일이 있어도 김치를 담가야 한다는 소리를 그렇게 했다.
토요일은 느지막이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시장에 가자고 보챘다. 다행히 본가에서 남편을 호출하는 바람에 나의 오전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나도 오늘 꼭 해야할 일이 있었다.
그 동안 날씨가 오르락 내리락 널을 뛰어서 겨울 옷과 봄 옷이 뒤엉켜 옷장이 뒤쥐박죽 아주 엉망이었다. 오늘은 꼭 겨울 패딩을 정리해 넣어 옷장을 널찍하게 쓰고 싶었다.
사실 옷장 정리하는 것도 남편 때문이기도 하다. 며칠전에 자기는 겨울 옷 정리를 다 했다고 하는 것이다. 왠일로 옷장정리를 다 했냐며 얼마나 잘했나 남편의 옷장 문을 열어보니 꽤 깔끔했다. 그런데 겨울 코트며 패딩은 어디다 뒀냐고 물어보니 피식 웃기만했다.
뭔가 쌔한 느낌이 들어 내 옷장문을 열어보니 가관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좁은 옷장에 남편의 겨울 옷이랑 내 겨울 봄 옷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손 들어갈 틈도 없이 빼곡히. 그걸 어떻게 걸었을까 싶을 정도로 빼곡히.
그것도 옷장정리라고 해놓고... 자기가 생각을 해도 무안했던지 실실 쪼개고 있었다. 확 그냥 두들겨 패줄까 하다가 그냥 귀엽게 봐줬다. 원래 성질 드런 넘이 참는게 원칙이니까. 그런 원칙이 어디있냐고? 있다.
서련네집 원칙.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옷장정리가 오후 두시쯤 끝이났다. 때마침 나타난 얄미운 남편은 열무 사러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마스크를 끼고 동네 외각으로 차를 몰아 대형 마트로 갔다. 농산물 가격이 제일 착한 곳이다. 오늘도 역시나 야들야들한 열무가 한단에 천 오백원 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싱싱한 단으로 세단 골라 비닐봉투에 담아 카트에 올리려고 하는데 남편이 또 욕심을 부렸다.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고 하면서 세단을 더 담는거였다. 너무 많다고 그럼 일이 커진다고 말려봤지만 자기가 다 할거라고 무려 여섯단이나 되는 열무를 봉투에 담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끼니를 거의 집에서 해결하려니 해야할 일이 참 많다. 김치도 담가야 하고 밑반찬도 해야 하니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야말로 먹고 치우는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