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20분...
쉬는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부스럭 거리는 남편 때문에 일찍 깼다.
남편은 어제저녁에 너무 먹고 싶었던 라면을 끓여서 먹을 거라고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고 있었다.
혈압 조절을 해야 할 사람이 밤에 무슨 라면이냐고 못 먹게 했더니 기어이 새벽부터 라면이다.
남편 말로는 라면을 끓여 채에 받쳐 국물을 쏙 빼고 먹으면 나트륨 걱정 안 해도 되고 또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고소한 것을 못 먹게 했더니 밤 새 잠을 잘 수 있었겠나 싶었다.
그 고소한 라면을 원 없이 먹으라고 하고 나는 아침밥을 지었다.
오늘은 보리밥.
쌀 여섯 겁에 보리쌀 한 컵을 잘 씻어 압력솥에 안쳤다.
고슬 고슬 잘 지어진 것 같다.
주걱으로 살살 저어 오늘 먹을 만큼만 보온 밥솥에 덜어 놓고 냉동 보관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오늘의 메뉴는 돈가스 상추쌈이다.
냉동 돈가스를 튀겨 상추에 싸서 먹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돈가스를 튀기기 전에 일단 상추를 씻고 오이와 파프리카도 씻어 놓았다.
아 그리고 밥상에 빠지면 섭섭한 청양고추도 씻어서... 어라 그런데 야채실에 청양고추가 없었다.
남편에게 청양고추를 다 먹었냐고 물어보니
"찾아봐."라는 굵고 짧은 답변이 들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내가 무언가를 찾는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래, 찾아보자.
냉장고를 한참 뒤지다가 혹시나 해서 김치냉장고를 열었는데 거기에 청양고추가 있었다.
"청양 고추를 김치 냉장고에 넣으면 어떡해! 얼은 거 아녀?"
다행히 얼지는 않았다.
야채는 김치 냉장고에 넣으면 얼 수 있으니 일반 냉장고 야채실에 넣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번번이 잊어버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곤조곤 잔소리를 하는 끈기를 보여주자.
남편이 집안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내가 편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잔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하자. 잔소리는 끈질기게 그러나 지치지 않게 잘...
상추와 야채를 준비해 놓고 냉동 돈가스를 튀겨 쌈 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아침 상을 차렸다.
8시 20분...
딸내미는 아직 주무시고
남편은 라면 드시고 또 주무시고...
이 것은 오직 나 만을 위한 아침 밥상이 되겠다.
한 쌈 해 볼까?
상추 위에 갓 지은 밥을 올리고 돈가스에 돈가스 소스를 푹 찍어 올려서 한 쌈.
맛있다.
이 번엔 돈가스에 쌈장을 올려서 한 쌈.
음... 맛이 없진 않다.
다시 돈가스 소스를 올려서 한 쌈.
역시 돈가스엔 돈가스 소스를....
오늘은 냉동 돈가스 상추쌈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후식은 누룽지와 숭늉
역시 숭늉이 갑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으니 이제 시댁으로 가자.
오늘은 구피와 다슬기가 살고 있는 어항의 물을 갈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