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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7

인터넷 TV

by 서 련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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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day 2007/12/18 (화) 06:10

다시는 사랑도 이별도 안하려고 두 손이 두 눈을 가려봐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나쁘지 않아...'
 이삼일 전에 바꾼 휴대폰 벨소리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단말기 액정에 발신자 번호를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형화 되고 단정하고 깨끗하고 밝은 텔레마켓터의 음성이었다. 전에 같으면 더 들어 볼 것도 없이 바쁘다는 핑개를 대며 곧바로 전화를 끊었을 텐데... 벨소리때문이었는지 아님 무겁게 누르던 일이 끝난 다음에 밀려든 여유때문이었는지 나는 애써 전화를 끊으려고 하지 않고 상대편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5년 장기 이용 고객에게 **TV를 6개월간 무료 시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두어달 전쯤에도 이런 안내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거절을 했었었다. 필요없다고 말을 하는데도 "좋은 기회"라는 말을 강조해가며 한사코 이유를 다는 것이었다. 그때 상담원의 은근한 비아냥, 그러니까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차느냐?라는 식의 비아냥 거림에 바짝 약이 올라서 큰소리를 내며 "절대로 안 해요! 절대로!" 그러면서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일을 떠 올리며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상담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후에 **TV를 설치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그 후로도 설치기사의 방문 시간을 조정하려는 전화가 3통이나 더 왔고 거기서 안내해준 시간대에 커다란 안경을 우스꽝스럽게 낀 이십대 후반의 설치기사가 도착했다. 모 개그맨을 닮은 외모의 설치기사는 인터넷 TV를 설치해 주고 리모컨 작동법을 상세히 설명한 다음에 돌아갔다.
 
 설치기사가 돌아가고 한참 후에 인터넷 회사에서 설치기사에 대한 평가를 내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기사가 방문해서 불쾌한 일은 없었는지 설명은 꼼꼼하게 해 줬는지 설치 한 후에 뒷처리는 깔끔하게 해 줬는지 등등을 묻는 전화였다.
 
 내가 누구를 평가해야한다는 건 좀 우스운 일이지만 해야한다니 어쩔수 없이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 떠오르진 않았다. 무의식 중에 그의 외모가 떠올랐던 것이다. 커다란 불태 안경을 우스꽝스럽게 낀 모 개그맨을 닮은 친근한 외모가 말이다. 
 
 외모가 누구를 닮았다는 것은 그 누구가 누구든 간에 다소 친근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나 보다. 난 그가 한 일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 친근한 외모때문에 무턱대고 최고 평점 7점을 줬다. 하지만 곧바로 왜 최고평점을 주었느냐는 상담원의 질문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한 일때문에 그런 평점을 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친근한 외모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건너편에서는 Why?라고 묻고 있다.
 
  "뭐 그냥... 일처리도 깔끔하게 한 것 같고... 설명도 그만하면 상세하게 해 준 것 같고..."
 대충 위기?를 모면한 나는 전화를 끊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누가 누구를 평가 한다는 것은 그 평가에 대한 그 만큼의 책임이 따라야만 하기 때문에 언제나 진땀나는 일인 것 같다.
 
 그가 돌아가고 나는 **TV를 틀어 놓고 리모컨을 돌리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서 방송 프로그램을 찾았다. 이제껏 뭔가에 몰두한다고 놓쳐버린, 꼭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TV 브라운관 위에 질비하게 올려져 있었다. 텔레비젼을 안보면 이야기가 안통하는 세상에 텔레비젼과 담 쌓고 사는 나를 위해 나온 안성마춤 TV. (본의아니게 광고를 하고 있는 나^^;)
 
 전에 내게 전화를 했던 그 상담원이 왜 그렇게 비아냥 거렸는지 이젠 알겠다. 하지만 6개월만이다. 6개월. 나는 내년 달력에다가 설치기사가 방문한 날로부터 6개월이 되는 날을 찾아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6개월이다.'
 
 그나저나 그 6개월동안 나는 텔레비젼이란 매체에 중독이 되어버리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할 일이지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이산" 따라잡기에만 열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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