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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7

유종지미

by 서 련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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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day 2007/12/24 (월) 16:48




동네가 떠나가라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오는 아이의 손에는 달력이 하나 들려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랑 만든 DIY 달력.
점토공예 시간에 만든 작은 액자 소품도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책가방에 실내화 가방 그리고 수업시간에 만든 달력이랑 점토공예 시간에 만든 액자...
그 많은 것을 잊어버리지도 않고 용캐 잘도 챙겨 온 아이가 문득 낯설었다.
 
얼마전 기말고사를 치르고 아이 담임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아이 시험 성적을 보고 많이 실망하지 않았냐는 전화였다.
학년 평균 점수를 한참이나 밑도는 점수였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씩씩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방학 동안 나름대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줄 계획이라고 말을 했다.
사실 점수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니었고, 방학 동안에 내가 아이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 온 담임에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화를 하는 그 순간, 아이 방학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버렸다.
 
담임은 평소 나만보면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 아이만 보면 욕심이 생긴다고 하는 말이었다.
조금만 더 붙잡고 가르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의를 불사르는 것 같았다.
대단한 열정이고 또 대단한 정성이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정작 염려를 했던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해가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학교라는 제도권에 대해 도대체가 적응이 어려우니 불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이 담임이랑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며 여름 방학을 보내고 또 한 학기를 보낼 시점이 되었다.
머지않아 이젠 1학년의 마지막 날도 올 것이다.
 
통화를 하고 며칠이 지나고 난 지금, 나는 부쩍 커버려 문득 낯설어진 아이를 보면서
그 때 아이 담임에게 왜 애써 그런 말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건 아마도 마지막이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담임과 함께 따끔거리는 불협화음 속에 서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有終之美" 를 거두어야 했기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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