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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8

아이의 선물 속에 숨겨진 뜻

by 서 련 200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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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향한 속삭임 2008/02/20 (수) 10:12

시원한 오가피차를 마시려고 냉장고 홈바를 열었는데 거기엔 빨간 리본으로 장식이 된 빼빼로가 있었다.

어제 저녁, 빼빼로가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에게 빼빼로를 사줬는데 어느 새 장식까지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둔 모양이다.
아이는 빼빼로만 사주면 항상 저렇게 장식을 달아서 냉장고 홈바에 넣어 두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누구를 주려고 그렇게 예쁜 장식을 달아 놓았냐고 물어보면 아이는 항상 '아빠 선물'이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이젠 냉장고에 장식된 과자가 들어 있으면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그것은 아이가 아빠에게 주는 '아빠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아빠 선물'덕에 오늘 아침에 아이를 깨우는 일은 수월했다.
자는 아이 귀에 대고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냉장고에 넣어둔 '아빠 선물'을 엄마가 다 먹어버리겠다고
소곤거린 후 쏜살같이 방을 빠져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먹으면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때문에 다소 시끄럽다는 부작용이 있긴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는 유독 빼빼로만 생기면 아빠한테만 선물을 준다고 난리다.
엄마인 나도 있는데...
슬슬 아이가 괴씸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보고 왜 나한테는 빼빼로를 주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쪼잔한 나는 그것이 그렇게도 궁금하다.
 
침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부스스한 몰골로 식탁으로 걸어와 엄마인 나를 잠깐 흘겨보더니
접시에 담겨 있던 빼빼로를 획하고 낚아채서는 아빠에게 갔다.
곧 아이에게 선물을 건네 받은 애아빠는 감동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무너무 고마워! 그런데 아빠는 지니의 고마운 마음만 받을 게. 과자는 밥 먹고 이따가 지니가 다 먹어, 알았지?"
아빠의 말을 듣는 아이의 부스스한 몰골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아이는 왜 엄마에게는 과자 선물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나는 왜 아이한테서 과자 선물을 받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그 이유는 일단 과자 선물을 받으면 아빠는 전혀 먹지 않지만 엄마인 나는 너무나도 잘 먹는다는 것이다.
과자를 너무도 싫어하는 아빠한테 선물을 하면 생색은 생색대로 낼 수 있고 과자는 과자대로 먹을 수 있지만
과자를 너무도 좋아하는 엄마한테서는 아무 것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는 과자를 좋아하는 엄마보다
과자를 싫어하는 아빠에게 선물을 해야만이 그 과자를 다시 자기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이에게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으니 말이다.
 
나는 부스스한 몰골로 흐뭇하게 빼빼로를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조금전까지 스멀스멀 피어 오르던 아이에대한 서운함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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