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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8

냉소적인 나

by 서 련 2008.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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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향한 속삭임 2008/05/13 (화) 10:32

설거지에 청소, 세탁, 화초에 물주기까지 끝내고 나서 오랜만에 컴터 앞에 앉았다.
곧장 들어가야만 하는 홈피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이렇게 블로그에 들어와 있는 걸 보면
또 뭔가를 주절거리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나 보다.
 
자... 그럼 꿈틀거리는 욕구를 션하게 배설해 보자.
무슨 말을 하러 들어왔던가?
 
앗차... 그래... 그 녀석 이야기를 하려고 들어왔다.
(그 녀석 = 골목 구탱이에 자리한 24시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녀석)
 
지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시원하게 마시게 하려고
미숫가루를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려는데 설탕이 없는 거야.
그래서 설탕을 사러 자주가는 마트에 갔었는데
아직 문이 닫혀 있었어.
그래서 골목 구탱이를 돌아 24시 편의점엘 갔었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는 거야.
나 원래 편의점 같은데 들어가면 사람을 잘 안쳐다보거든.
그런데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데 안쳐다 볼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그 녀석에게 어색한 웃음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수퍼보다 300원이나 더 비싼 설탕 한봉지 주워 들고 계산대로 갔지.
 
나는 오천원짜리 한장을 꺼내 주며 거스름 돈을 내어 주길 기다렸는데...
그런데 말이야.
그 녀석이 천원짜리 석장을 꺼내서 주는가 싶더니
반듯하게 펴려고 그러는지 어쩌는지
나한테 건네 줄 생각을 안하는 거야.
 
나는 그때 거스름 돈을 받으려고 손을 미리 내밀고 있었거든.
그 녀석이 지폐를 쪼물거리는 동안
계속 그렇게 손을 들고 있다가 팔이 아파서 손을 내리려고 하는데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녀석이 지폐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정말로 정중하게 거스름돈을 내미는 거야.
 
'저 녀석 처음으로 일터로 나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거스름 돈 받아 쥐다가 동전을 떨어 뜨렸지 뭐야.
내 실수 인 것 같은데 그 녀석이 대뜸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세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정말로 죄송한 얼굴로 말이지.
나는 동전을 주섬주섬 주으면서 그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니 괜찮아요, 내가 잘 못 받아서 그런건데 그렇게 죄송할 것까지 없어요."
 
대충 동전을 주워들고 편의점을 빠져 나오려는데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그 녀석이 허리를 있는대로 굽히면서 인사를 하더군.
 
'의욕에 차고, 분에 넘치는 친절이 때론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걸 그녀석은 언제쯤 배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언제부터인가 친절을 친절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나는,
'점점 더 시니컬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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