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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8

식겁하다

by 서 련 2008.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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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향한 속삭임 2008/08/18 (월) 11:28





8월 17일 오후...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빗나가지 않을 듯 남사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막 젖을 뗀 강아지들 한테 정신이 팔려 있었고
아이 할아버지는 강아지 한테 정신팔린 손녀 딸을 들여다 보느라 당신 역시 정신이 없는 듯 싶었고
아이 아빠는 마당 가장자리에 무성한 풀을 베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소를 막 끝낸 나는 마당 귀퉁이에 서서 거센 바람과 함께 몰려 드는 먹구름을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었다.
집안에서 땀을 흘리다 막 나와서 맞은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너무 시원해서 그 바람타고 날아 갈 것만 같았다.
마음껏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 보던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현기증이 일어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거기서 뭐해? 왜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있어? 여기 의자도 많은데?"
 
마당 풀을 다 베고 등나무 순을 치고 있던 애 아빠가
등나무 밑에 있는 의자 하나를 장갑으로 쓱쓱 문질러 닦으면서 거기에 앉으라고 했다.
시댁 등나무 밑에는 파라솔이 있고 그 주위에 의자가 많은데 하나 같이 먼지가 들러붙어 있어 앉을 수가 없었다.
현기증이 나서 그자리에 주저 앉기 전까지는 그 곳을 닦아서 거기 앉으려고 했는데
현기증이 나는 바람에 이렇게 주저 앉아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할 수가 없었다.
남편 옆에 있는 애할아버지가 들으면 걱정할까 싶어서 쭈그려 앉아 있는게 더 편하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말 하고 나니까 정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역시 몸이고 마음이고 할 것 없이 자기 합리화에 강한 서련....)
 
팔짱낀 두팔을 무릎위에 올리고 그 위에 고개를 누이니 하늘과 들판이 비스듬히 보였다.
들판에는 이제 막 고개를 내 밀기 시작한 벼 이삭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얼마쯤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까? 바람이 잦아 들었는데 어디서 이상한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더니 곧 발 밑으로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본능적으로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살그머니 고개를 바로하고 발밑을 쳐다 보았다.
풀색의 길다란 무언가가 발끝을 스치며 미끄러지듯 스쳐가고 있었다.
동공이 커지면서 머리끝이 쭈뼛하게 서는 느낌!
나는 벌떡 일어나 두어 발짝 뒷걸음으로  뛰어나와 소리를 있는대로 질렀다.
너무 놀라면 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법인지 있는 힘을 다해 지른 비명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 자신한테 조차도 들릴 듯 말 듯 했다.
나는 다시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제법 들릴 듯한 소리가 입을 터져 흘러 나왔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또 끔찍하게 싫어하는 물건이 바로 뱀이다.
그런 뱀을 올해 들어 처음 봤다. 얼마나 놀랬던지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 같다.
그러게 애초에 남편이 닦아준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뱀도 내가 거기 그러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안스럽게 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나 서련은 자기 합리화에 강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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