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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

2007/11/정호승-허물

by 서 련 2007.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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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때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정호승
 
 
 
오랜만에 詩集이란 걸 구입했다.
(주)창비에서 발행한
 정호승님의 <포옹>이란 시집을...
 
멍한 시선을 던지며 한 편 두 편 시를 읽다가 "허물"이라는 시에서
내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을 생각하고는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그리고 다시 한 편 두 편 읽어 가다가...
끝내는
쿡... 하며
  바보같이 울고 말았다.
.
.
.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정호승
 
 
 삶이라는 벽에서 이제는 밀려나와
녹슬고 굽은 못 처럼
병들어 피폐한 한줌 영혼이 된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기 때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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