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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8

제 머리 제가 깎기

by 서 련 2008.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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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거울을 들고 전신거울 앞에 서서 머리 모양을 살핀다. 결혼을 하고 난 후 내 머리 모양은 줄곧 올림머리였다. 길게 늘어뜨려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기엔 내 머리카락은 너무도 가늘고 볼품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유도 내가 올림머리를 하게 된 이유였지만 그것 보다는 손에 잡히는 건 무조건 입에다 넣고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에게 머리카락을 쥐여주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어떤 방송프로그램을 본 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그 방송프로그램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미용사가 나와서 머릿결만 만져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 할 수 있다는 말만은 기억한다. 그때 방송에서 미용사는 머리결이 가늘고 푸석해서 힘이 없는 사람은 많이 까다로운 편이란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내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외모뿐 아니라 머리카락 하나에서 조차 사람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 속내를 보이기 싫어하는 나에겐 찜찜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사실 난 좀 예민한 편이다. 남들이 별 의미없이 흘리는 말도 그냥 흘려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고서는 두고두고 그 말때문에 혼자 상처를 받곤 하니 좀이 아니라 많이 예민한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때부터 미용실엔 가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줄곧 내 머리모양은 업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 업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림경력만큼 덕지덕지 온몸에 달라붙은 살덩어리들이 다소 세련되어 보이고 날렵해 보이던 목선을 잠식한 후부터 일 것이다. 어느날 나는 뒷 거울을 대동하고 전신거울 앞에 서서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두리뭉실한 목선을 타고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머리모양을 한 내모습이 마치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가위를 찾아 들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잡히는 대로 잘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내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기 시작한 것이.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적당히 잘려져나간 머릿결에 탄력과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간 머릿결이 힘이 없고 푸석한 이유를 예민한 성격 탓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너무 길었기때문인 것이다.

한 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던 탓에 머리카락은 또 어깨선을 훌쩍 넘겼다. 그래서 어제는 가위와 뒷거울을 들고 전신거울 앞에 선다. 이번엔 전에보다 훨씬 더 짧게 자를 요량으로 거울속을 들여다보며 헤어스타일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간간히 뒷거울로 머리모양을 확인해 가며 가위질을 한다. 그리고 난 후 나는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나는 뭘 해도 너무 잘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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