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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에세이

깨보세이

by 서 련 201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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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혀뒀던 집안 일 중에 하나,
깨보세이 만들기.


볶은 참깨에 소금 약간 쳐서 절구에 넣고 살짝 갈은 걸 경상도 북부 사람들과 강원도 사람들은 "깨보세이" 라고 한다.
참고로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을 해보니 표준어는 "깨고물"이라고 하는데...
깨고물? 단어에서 풍겨져 나오는 뉘앙스가 어쩐지 들척지근하다.
참깨 원래의 고소한 맛을 나타내기엔 깨보세이란 단어 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지 싶다


각설하고...(☜ 어쩌다가 내가 요런 촌스런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흠 어쨌든.)

2년동안 냉동실에서 잠만자던 참깨.
그 동안 볶아야지 볶아야지 생각만 할 뿐 참깨를 씻어 건져 볶을 생각을 하니 멀쩡하던 허리도 아파오고
안아프던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아서
국내산 시아버님표 참! 참깨를 외면하고 수퍼에 들러 중국산 볶은 참깨를 사다놓았었다.
그러고 났더니 이곳저곳 쑤시던 곳이 말짱해지더라는.
그런 지난 날의 기억이 살포시 떠오르는 오늘, 왠지 살포시 부끄럽다.


 

지난 날의 외면 때문에 2년동안 냉동실에서 잠만 자던 참깨를
찬물에 담가서 조물조물한 다음  잠시 가만히 놓아 두면
속이 꽉찬 참깨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쭉정이들만 물 위에 동동 뜬다.

나는 바닥에 가라앉은 참깨들이 다시 물 위로  떠오르지 않게 조심 조심하며 그릇을 살며시 기울여 쭉정이를 쏟아 냈다.
그런 다음 조리로 참깨를 살살 씻어 건지는데...
아버님이 직접 농사지은 참깨라서 그런지 돌이 많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돌이 참깨를 따라 올라오지 않게 살살 건져야 했다.
한 3번쯤 씻어 건졌을까? 더이상 돌은 나오지 않았다.

참깨를 볶으려면 씻어 건지는 일이 참 번거롭고 까다롭다.
예전에 엄마가 밭에 일하러 나가면서 다 씻어 건져놓은 참깨를 볶아만 놔라,고 했을때 그 일이 왜 그렇게 싫었던지.
'참깨를 새카맣게 태워 놓았으면 엄마가 다시는 참깨 볶는 일을 시키지 않을거야.
새카맣게 태워야지, 새카맣게 더 새카맣게!'
댓발 나온 입을 하고서는 참깨를 열나게 볶았지만
결국 생각만 그렇게 했지 참깨를 새카맣게 태우는 일은 없었다.

납작한 참깨가 볶으면 볶을수록 통통해지는 것이 왜그렇게 신기하던지.
오동통한 참깨가 노릇노릇 해질때쯤이면 댓발 나왔던 입도 쑥 들어가 있곤 했지. 
 


참깨를 씻어 건지는 일에 비하면 볶는 일은 참 간단하다.
채반에서 10분쯤 물기를 뺀 참깨를 냄비에 넣고 물기가 없어질때까지 중간불로 볶다가
물기가 없어지고 참깨가 톡톡 튀는 소리를 내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노릇노릇할때까지 볶는다.



볶은 참깨 반은 그냥 유리병에 담아 두고 반은 깨보세이를 만들었다.
약간의 굵은 소금을 절구에 넣고 방망이를 바닥에 대고 갈은 다음 참깨를 넣고 역시 갈아서 만들었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그러자 2년동안 묵혀왔던 체증이 살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사는 것도 좀 고소해 지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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