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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으로 피어나라

벚꽃 길 산책과 목련꽃 반신욕

by 서 련 201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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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년쯤 전이었을거야.
시내 곳곳에 가로수로 심겨져 있던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아를 케내고 벚꽃으로 바꿔 심은 것이.
메타세콰이아의 짙고 푸른 그늘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몇해 여름 동안 그늘이 거의 없다시피한 벚꽃나무가 못마땅하게만 느껴졌었지.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벚꽃나무가 성장한 지금 벚꽃나무는 봄 밤의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사진속에 벚꽃은 2년전에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앞의 벚꽃이라 수형이 그렇게 우람하지는 않다.

어제는 몸속에 비타민D를 채워 넣으려고 햇볕이 쨍쨍한 낮 동안 거리를 걸으면서 벚꽃 구경을 했다.
한 낮의 햇살을 받은 벚꽃은 눈부셨다.





햇볕을 받은 내 몸이 식물처럼 광합성이라도 한 걸까?
에너지가 넘쳐서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에 아이를 졸라 벚꽃 구경을 하러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애아빠는 걷는 걸 싫어한다.
조금만 걸었다 싶으면 다리가 아프네 발바닥이 아프네 하며 엄살을 부려서 
그냥 집에서 텔레비젼이나 보고 있으면 좋겠구만
빈집에 혼자 있기 싫다며 기어이 따라 나서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찬란한 벚꽃을 올려다보며 거리를 맴돌았지.

너무 오래 올려다 봤을까? 
고개가 아플쯤 아이가 별안간 벚꽃을 따서 화전을 만들어주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애아빠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산 밑에 있는 공원으로 가자는 거다. 

거기까지 가려면 한 참을 더 걸어야 하는데
딸내미가 화전부쳐 먹고 싶다는 말에 좀 더 깨끗한 곳에 피어있는 꽃을 구해주고 싶었나 보다.
봄 밤에 못 말리는 父情때문에 나는 또 화전을 만들게 생겼다.



산 밑에 있는 공원에 가니 시내와는 다르게 벚꽃이 이제막 봉우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서 있는 아담한 벚꽃나무에서 벚꽃을 따고
덤으로 목련꽃을 몇장 더 땄다.
목련꽃이 지기전에 꽃잎을 우려 차로 한 번 마셔 보고 싶었거든.

목련꽃을 딸때는 향이 그렇게 그윽한 줄 몰랐는데 집에 와서 채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 놨더니
그윽한 목련향이 온 집안에 가득하게 퍼졌다.

꽃 한 송이를 물에 깨끗이 씻어 뜨거운 물을 붓자 깊고 짙은 향이 콧속으로 훅 하고 밀려 들었다.
차 빛은 엷은 황색을 띄고 맛은 다소 맵고 마시고 난 후에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그래서 더는 마시지는 않고 그냥 향기만 맡고 있는데

문득, 반신욕할 때 목련꽃을 물 위에 띠워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뜨거운 목욕물을 받아서 그 위에 목련꽃을 띄웠다.
뜨거운 물 위를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목련꽃은 떠있다.

'이래도 되나?'

정말 그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사는 게 너무 황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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