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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

소심하고 겁 많은 고양이와 용파리

by 서 련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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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나의 하녀 가족은 남사라는 동네에 간다.
그럴때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우아하게 뒹굴거리곤 했었지.

하지만 어제는 새끼하녀가 나에게 목줄을 채워 분홍색 가방에 집어 넣더니

"엄마, 오늘은 옥순이도 꼭 데려갈래." 런다.

평소 내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고양이라 밖에 나가는 걸 지독하게 무서워 한다는 걸 아는 하녀였지만
어제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새끼 하녀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 주는 것이다.



 나는 바깥 세상이 너무도 두렵다.
하지만 여기 이 곳... 등나무 아래는 아늑하고 편안하고 뭣보담도 시원하다.





등나무 옆에는 봉숭아라고 불리는 식물이 심어져 있는데 어제는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색깔이 참 곱기도 하지?
봉숭아꽃이란 걸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니 생후 두 달때 헤어진 첫사랑이 생각난다.


알듯 모를듯한 첫사랑을 닮은 향기가 솔솔 느껴질때

"옥순아, 내가 봉숭아로 예쁘게 물들여 줄께~"라고 새끼 하녀가 말했다.

새끼 하녀가 봉숭아꽃을 따면서 저렇게 말을 할때까지도 나는 그저 내 발톱에 예쁜 물을 들여줄지 알았다.
발톱에 들인 봉숭아 물이 첫눈이 올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럼 나도 첫사랑을 만날 수가 있을까?하고 가슴 설레며 기대를 하고 있었지.


하지만...




물을 들이려 한 곳은 발톱이 아닌...
다름아닌 나의 곱디고운 하얀 털이었다.




세상에나...

그냥 집에 있을 걸 괜히 따라 나섰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너무 기가막혀서 웃고는 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내 몰골을 이모양이로 만든지가 얼마나 됐다고
새끼하녀는 내 콧등에다 잠자리를 붙여놓고 또 다시 나를 능멸하고 있다.

만약 집에서 그런 행동을 했었더라면 곧바로 응징을 했을텐데
여긴 두려운 바깥세상 아니던가!

하녀 모녀가 나를 이 험한 세상에 버리고 가기 전에 알아서 겨 주는 수 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엄마, 잠자리가 영어로 뭐야?"

"dragonfly"

드래곤플라이? 그렇구나!

 


하녀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자리가 영어로 드래곤 플라이라는 걸 알았다.



가만있어봐.
드래곤플라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dragon은 용이고...
fly는 파리...

용파리?

용파리... 흠... 시골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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