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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1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까만 거미"는 아니지만....

by 서 련 201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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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거미만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 김수영, 1954.10.5





슬픔과는 또 다른 설움이라는 단어를 오래전에 잊었다.
그러나 우연히 프레임 속에 갇힌 거미를 보며 김수영의 거미를 떠올리니
오래전에 잊어버렸다던 설움이라는 단어가 세삼스럽게 느껴졌다.

바라는 것이 있어 설움에 몸을 태운다는 시인 처럼
나 역시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 설움도 첩첩이었던 적이 있었다.

바라는 것이 사라지고 나니 첩첩이던 설움도 사라졌다던 어느 먼 옛날의 기억,
과연 그 때 그 것이 설움의 심연이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설마, 아직도 나는 설움의 언저리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설마, 아직도 나는 설움이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를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
그래 어쩌면....

그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2011년 7월15일, 장마비가 너무 지루해서 정신이 없는 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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