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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1

이러다가 언제 해?

by 서 련 201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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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아침? 아이 졸려... 마이 졸려... )



해야 할 일이 있어 다른 날 보다 일찍 일어난 아침.

정수기 앞에서 물을 받아 마시다가 지난 밤 남편이 야식을 만들어 먹고 남긴 수북한 설거지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거지만 해 놓고 해야지.'

야식이라고 해 봐야 고작 라면 하나 끓여서 찬 밥 말아 먹는 것이었을텐데
설거지통에 구겨져 있는 그릇은 고작 라면 하나 끓여 먹은 정도라고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았다.
혹시 내가 어제 저녁 설거지를 하지 않았나 싶어서 설거지통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분명 어제 먹은 저녁 설거지는 아니었다.

16센티 편수 냄비와 뚜껑, 20센티 양수 냄비와 뚜껑, 면기 하나에 밥 공기 하나, 수저 두 벌과
배추김치와 깻잎 김치를 담았던 찬통 두 개가 정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참~ 대단한 설치 미술가 나셨쎄요.
아니 그런데 라면하나 끓이는데 뭔 넘의 설거지는 이리도 많데?
누가 보면 이 지꾸석 예편네는 천날 만날 설거지도 탑처럼 쌓아 놓고 살겠다고 하겠네 증말.
냄비하나에 라면 참하게 끓여서 뜨건 면발은 냄비뚜껑에 덜어 먹고 밥도 그냥 그 냄비에 한 술 떠서 말아 먹으면
냄비하나에 수저만 씻으면 되잖아 말이야.
냄비에 끓여서 면기에 담아서...  
참 우아하게도 드셨네요?
그런데 왜 냄비가 두개씩이나 필요했던거지?

                                                                  (나는 알지... )

???

아하!
라면에 기름기를 쫙~ 빼서 먹으려고 한 쪽 냄비에는 면을 삶고 또 한 쪽 냄비에는 스프 국물을 끓이고...?

에이...썩을넘의 영감탱이! 다이어트를 하려거든 야식을 끊어야지!'


라면 국물이 눌러 붙은 냄비를 수세미로 박박 닦으면서
설거지를 하는 입장이랑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랑은 뭐가 달라도 한 참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하려던 일을 하려고 하는데 라면 국물에 얼룩진 가스렌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스렌지만 닦아 놓고 하자.'

오늘은 새벽부터 철수세미가 제구실을 하는 날인가?
구입한지 6년된 하얀색 3구 가스렌지를 어제 사온 물건처럼 반짝반짝하게 닦고 나니 허기가 밀려 왔다.

'그래, 아침이나 먹고 하자.'

어저께 마트에서 사온 참나물 한 팩을 데쳐서 무치고
그저께 홈쇼핑에서 배달되어 온 굴비 6마리를 손질해 노릇노릇 구워서 아침 7시에, 그것도 혼자, 아침 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난 나는 어떤 일을 하려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또 일상으로 빠져 들었다.
남편 출근을 시키고 아이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며칠전부터 거슬렸던 다육화분의 다육식물들을 다시 옮겨 심고...
새벽부터 일어나 하려고 계획 했던 일은 정작 하지도 못 한 채 이렇게 오후 시간을 맞이하고 말았단 말이다.
 
'에~이 씨폴 맨날 이래! 이러다가 언제 해? 며느리 환갑 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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