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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

멀리 가지도 못 하는 답답한 휴일

by 서 련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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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귤 밭에서 선과장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날아온 풋풋한 귤 두 박스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독해서 마시지도 못하는 빨간 뚜껑 소주 한 박스가 어디서 굴러 들어왔다.
그 후...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귤을 독해서 먹지도 못하는 빨간 뚜껑 소주에다 담가 버렸다.


그렇게 노랗게 노랗게 익어가던 귤 담금주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나의 허기진 뱃속으로 들어왔다.
술에 취해 흘려버린 시간만큼 아까운 시간이 또 있을까?
노오란 담금주가 뱃속에서 분해과정을 거치는 사이 연휴가 반이나 흘러버렸다.

취기가 사라진 새벽,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랜만에 새벽 산책을 나가볼까?
롱패딩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고요한 새벽, 파랗게 날이 선 추위를 헤치고 성애를 잔뜩 뒤집어쓴 자동차로 들어가 온기가 돌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엉따 등따가 밀려올 때까지...

무릇 산책이라 함은 두 발로 땅을 딛고 거리를 어슬렁 거려야 함이 마땅한데 자동차 안에서 엉따 할 때까지 앉아있는다?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산책을 할 거라고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으니 언행불일치를 따질 일은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텅 빈 시내 한 바퀴를 돌다 들어왔다.
파랗게 날이 선 고요를 뚫고 말이다.

그렇게 움직이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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