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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이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 강신주

by 서 련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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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눈발이 날리는 2월 어느 날, 나는 보통 때 같이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다 CBS지식 강연  포스트 코로나, 세 개의 시선이란 콘텐츠에 눈길을 멈췄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기도 하고 최재붕 교수가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다 깜짝 놀랐다. 

5~6년 전쯤 팟캐스트 강연으로 알게 된 철학자 강신주님이 이전과는 많이 다른,

엄청나게 야윈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많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불현듯 "현애 살수(懸崖撒手)",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야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매달린 절벽은 지금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다.
집착의 대상이 존재하는 한 삶은 자유롭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 동안 나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참 많이 되뇌며 살았다.

삶이라는 고통에서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뗐나 싶으면 어느순간 또 다른 절벽의 끝에서 바등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수많은 좌절에 아파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의 삽화

 

 

무척이나 수척해진 강신주님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너무 오랫동안 강신주라는 이름을 (그리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나를) 잊고 살았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으로 다시 돌아온 강신주, 나는 다시 그를 읽는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실천한다.)

한 공기의 사랑에 숨겨진 아낌의 실천학을 "가슴으로 애절하게, 머리로 냉정하게, 첫걸음을 당당하게" 배우고 있다.

좋은 책을 읽고 아무리 좋은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행동하지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깨달음은 관념으로 머무를 뿐 실재하지 않는다 했다.

한 공기의 사랑에서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마이트리 카루나(자비)"에 이르는 방법을, 또한 실천하는 방법을 강신주 특유의 비법(헤겔, 칸트, 들뢰즈, 베르그송 등의 서양철학을 끌어와)으로 집요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방식 대로 따라가다가 4장, 고요한 물의 심연을 느끼는 동안 나는 잠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관념에 사로 잡힌 망집이었다 해도 잠시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카타르시스였다.
감사를 전한다.


인문학이 사라진 시대에 철학을 상실한 나 같은 대중 하나하나가 철학자의 가슴에 사무친 탓에 그는 그렇게도 수척해진 것일까? 걱정스럽다.
부디 무탈 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인문학도, 철학도, 그리고 철학자 강신주님도.

또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코로나 시국의 대한민국도 모두 무탈하길...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엔 김선우 시인의 시 여덟편이 실려 있다.

2021년 봄이 무르익고 있다.
"한 공기의 사랑"에서 시작된 사랑과 자유를 가슴으로 애절하게 읽어 보려고 김선우 시인의 시집 『녹턴』을 주문했다.

이번 봄은 "나와 너의 애달픔"이 가슴에 사무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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