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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

R-S773ND 냉장고야 잘 가라

by 서 련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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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이었을까? 아니 2006년이었다.
자그마치 16년을 나와 동고동락했던 냉장고였다.
아직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데 미련 없이 보냈다.
깊이가 너무 깊어 공간 활용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한 동안 냉장고를 꽉꽉 채워야만 마음이 편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냉장고를 채우고 또 채웠다.
그러는 동안 야채실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야채가 썩어나가는 건 부지기수였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가 냉장고 깊은 곳에 은근슬쩍 쌓여있기 일쑤였다.


냉장고를 작은 걸로 바꾸면 이 습관적인 과소비가 괜찮아질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냉장고를 바꿔야지 바꿔야지 생각만 하다가 추석 전에 새 냉장고를 들였다.
상냉장 하냉동의 슬림하고 이쁘장~한 냉장고를.

그런데 새 냉장고를 사서 들이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이 등치 크고 무거운 헌 냉장고를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폐가전 무료 수거 업체에 전화를 해서 수거 날을 예약하고 텅 빈 냉장고를 습관적으로 여닫으면서 2주를 기다렸다.
예약하고 기다리면 다 되는 줄 알고 말이다.

예약 당일 폐가전 무료 수거 업체에서 나온 직원이 말하길 냉장고가 너무 커서 사다리차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양문형이고 크다는 말을 했었는데...

애초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사다리차를 불러서 냉장고를 집 밖으로 빼놓았을 텐데...

업체에서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올 수 있다고 했고 냉장고를 집 밖으로 꺼내놓고 전화를 하면 수거해 갈 거라고 했다.

또 3일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보다못한 남편이 잠깐 나갔다 온다며 집을 나섰다.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3일씩이나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냉장고를 처리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중고가전 업체에 들렀다가 온 것이었다.
얼마전 내가 전화로 문의 했을 땐 분명 10년 이상된 냉장고는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용하게도 가지고 가겠다는 대답을 받아 왔다.

내가 딜에 실패한 원인은 "사다리차를 불러서 냉장고를 집 밖으로 빼놓을 테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다리차를 부르는 것은 곧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던 것이다.

"비용" 문제를 해결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6년을 함께한 세월이 무색하게도 냉장고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지난 토요일, 16년 동안 내 손 때가 묻은 냉장고는 떠났다.

R-S773ND 냉장고야 잘 가라.
그동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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