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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에세이

슬슬 월동 준비 하자 - 총각 김치 만들기

by 서 련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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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추석을 쇠고 텃밭에 가을무 씨를 흩 뿌려 놓았었다.
조금 더 일찍 심으면 종아리만큼 커지는 가을 무인데 일부러 늦게 파종을 했다.
동치미 무보다 작고 알타리 보다 좀 크게 키우기 위함이었다.
남편은 그런 무로 총각김치를 담가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취향껏 무를 길러 취향 껏 김치도 손수 담그면 좋으련만...
김치 담을 때가 되니 자꾸만 시골집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계속 모르는 척하려다가 주말에 비가 오면 날이 추워진다고 해서 내가 서둘러 시골집에 왔다.

텃밭 한 귀퉁이, 그러니까 (가로 2m, 세로 3m) 6제곱미터 정도의 넓이에 씨를 뿌렸는데
무를 뽑아보니 양이 상당히 많았다.
저번 주에 작은 형님네가 많이 뽑아 갔다고 했는데도 남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무청까지 다 김치로 담으면 양이 너무 많을까 봐 무청은 시래기를 만들고 무로만 김치를 담기로 했다.

무 뿌리와 잎을 잘라내고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받아 박박 문질러서 깨끗하게 씻었다.

크기가 큰 무는 국 끓여 먹으려고 몇 개 빼놓고 물에 담긴 무를 꺼내 도마에 놓고 배를 갈랐다.
내가 무를 자를 동안 남편은 광으로 들어가 땅 속에 묻혀 있는 항아리를 닦았다.

남편은 김치는 땅속에서 익혀야 제맛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수건을 물에 적셔 아버님처럼 항아리를 깨끗하게 닦아 냈다.

 

무를 다 자르고 보니 커다란 고무통에 절반이 훌쩍 넘는 양이었다.
남편은 80kg쯤 될 거라고 했고 나는 100kg는 족히 넘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남편과 나는 천일염 한 바가지로 무를 절이기 시작했다.

무에 소금을 뿌려놓고 보니 뭔가 비주얼적으로 부족함이 있었다.
그래서 무청을 조금 넣기로 합의를 봤다.


무청 한 바구니를 다듬어 씻어

남은 소금을 모두 뿌려 3시간을 절였다.
잘 절여지라고 중간에 한 번 뒤집었다. 물론 뒤집는 건 힘드니까 남편이 했다.

 

날씨가 점점 흐려질 즈음 절여진 무를 물에 헹궈 소쿠리에 밭쳐뒀다.

무는 커다란 소쿠리로 두 소쿠리 나왔다.
짜지 않게 잘 절여진 듯하다.


평상에 잘 걸려 있는 무청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해서 깨끗하게 씻은 고무통을 지붕이 있는 평상 위에 올려놓고


절인 무 한 소쿠리를 넣고 홍갓과

쪽파 한 단을 넣은 다음

나머지 절인 무 한 소쿠리를

아낌없이 쏟아 넣고 양념을 넣기 시작했다.

밀가루 죽 대신 쌀로만 만든 미숫가루 한 봉지를 물에 풀어 넣고

매실액 2리터, 까나리액젓 1리터, 끓이지 않고 가위로 잘게 자른 황석어 젓갈 1kg, 간 마늘 600g, 다진 생강 200g, 미원 아주 조금(한 20g 정도), 고춧가루 3근정도를 넣고 잘 버무렸다.


물론 버무리는 건 힘드니까 남편이 하고 나는 간만 봤다.
황석어 젓갈의 비릿하고 육덕진 향기가 폴폴 올라왔다.

황석어 젓갈을 푹 끓여서 찌꺼기는 걸러 내고 물만 넣자고 했더니 남편은 젓갈 냄새가 나야 제맛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황석어 젓갈을 통째 넣자고 했다.

젓갈을 싫어하는 내가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었더니 젓갈 좋아하는 남편은 한 발 양보해 가위로 황석어 젓갈을 잘게 잘라 넣자고 했다. 그렇게 잘게 잘라 넣는 걸로 합의를 보고 황석어 젓갈을 가위로 잘라 놓았었다. 물론 젓갈 손질은 젓갈 심하게 좋아하는 남편이 했다.

고춧가루 팍팍 넣었더니 황석어는 보이지도 않고 남편 취향대로 짜지 않게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완성된 무김치는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담고도 16리터 들이 김치통 한 통, 그리고 10리터 들이 김치통으로 2통, 이렇게 36리터나 나왔다. 이제 끝났다.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저 멀리서 배추를 한 아름을 안고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 오는 사람이 있었다.
옆 집, 아니 옆 밭 아저씨다! (후달달...)
올해 배추를 심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에게 배추를 주려고 손수 찾아오신 것이다. (엄마야!)
배추 한 통이 한 아름이었다.
배추가 너무 실한 것이... 여간 탐스럽지 않았다.
남편은 이때다 싶어 옆 집, 아니 옆 밭 아저씨를 따라가서 배추 3포기를 더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나더러 힘들까봐 3포기만 가져왔단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마음으로?...'

힘든건 둘째고 어쨌든 이렇게 좋은 배추를 얻었는데 옆 밭 아저씨를 빈 손으로 보낼 수 없어서 총각김치 한통을 들려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아름드리 배추 4통을 절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빗방울이 거세졌다.
이쯤 되면 하늘도 내 일을 돕는 것인가?


그런데...

이제 끝이다 싶었는데 다시 배추김치를 담가야 한다니...
나는 내일도 일 복이 터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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