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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에세이

16강 진출의 염원을 담아 끓인 갈비탕

by 서 련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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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난데없이 나타난 생갈비 3kg으로 갈비탕을 끓였다.

갈비는 한 번 삶아서 쓸 거라서 굳이 핏물을 제거하지 않았다. 하얀 기름덩어리도 따로 떼어 내지 않았다.
그냥 미지근한 물에 잘 씻었다.

커다란 들통에 생갈비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넉넉하게 붓고 월계수 잎과 커피를 넣고 끓인다.
식 후에 마시려고 블랙커피 한 잔을 타 두었었는데 식어버렸다.
그래서 갈비 초벌 삶는 물에 부었다.

온 집안에 월계수 향을 풍기며 펄펄 잘 끓는다.

3~4분 정도 끓인 후에 들통에서 갈비를 한대 한대 잘 흔들어 건진다.


초벌로 삶은 물은 미련 없이 버리고 들통도 깨끗하게 씻은 다음 무, 대파, 양파를 넣고 넉넉하게 물을 붓고 끓인다.

중간중간 고기를 건져 확인하니 적당히 삶기는 데는 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 후, 고기가 잘 익었다.
무와 양파와 대파를 건져내고 간을 할 시간이 왔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맛술과 후추를 넣는다.
건강한 맛을 원한다면 이대로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시판 갈비탕 맛을 원한다면 msg가 빠질 수 없지...
좀 더 진한 맛의 육수를 원한다면 업소용 소고기 다시다의 힘을 빌린다.


간을 한 후 베란다에서 하룻밤 식혀서 기름기를 걷어냈다. 간을 해서 식히면 고기에도 간이 적절하게 밴다.

토요일 아침.
갈비탕에 기름을 걷어내고 끓인다.

청양고추와 대파를 썰어서 준비를 하고...

뚝배기에 갈비를 건져 담고

국물을 붓고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팔팔 끓여서 뜨끈하게 먹는다.

다시 금요일 밤.
한국과 포르투갈의 축구 경기가 시작할 즈음해서 귀가한 남편은 원 없이 먹으라며 생갈비 3kg를 식탁에 던져놓고 곯아떨어졌다.

며칠 전 나는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갈비탕이 먹고 싶다고 했었다.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거나하게 취한 김에 생갈비를 사들고 왔던 것이다.
남편 Flex.
흠... 기특해.

남편은 취해서 혼자 자고 나는 남편 Flex에 취해서 갈비탕을 끓였다. 아침에 먹으려면 저녁에 끓여 놓아야 맛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로에선 한국...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축구경기를 보며 갈비탕을 끓였다.
"한 경기만 더하자! 한 경기만 더!"
안정환 해설 위원의 염원은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

후반 40분이 지날 무렵 다 끓은 갈비탕을 베란다에 내어 놓고 혼자 TV 앞에 앉아 축구경기를 보았다.
스코어는 1:1

"자, 이런 코너킥 상황에서 또 끊으면 우리가 역습으로 나갈 수가 있는... 우리 황희찬 선수가 있기 때문에... 손흥민도 있죠? 역습으로 나갈 때 하나만 걸리면 됩니다. 만약에 오늘 이 경기가 이렇게 끝나게 되면 4년을 또 기다려야 해요. 또 준비해야 해요. 자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안정환 해설위원의 간절함이 담긴 해설이었다.

추가 시간 6분이 주어졌고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안정환 해설 위원의 염원처럼 역습의 기회가 주어졌다. 골을 몰고 가던 손흥민이 상대편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골을 패스하자 황희찬이 그걸 받아 골을 넣었다. 해냈다!
나는 집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이겼어?" 묻고는 또 잤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지만 아무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고 없고는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루과이가 여기서 더 이상 골을 넣지 못하면 다득점에서 우리 대표팀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또 다른 우리 편은 가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나가 우루과이의 골 문을 단단히 지켜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염원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우루과이의 추가골 없이 경기가 종료되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가나전의 안타까움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토요일 아침.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일어나서 갈비탕을 원 없이 먹었다.
너무 질기지도 않게 또 너무 흐물거리지도 않게 적당한 쫄깃함을 유지하며 잘 삶겼다.


갈비 뼈는 일반 쓰레기로 분류해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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