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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07

양철지붕에 대한 단상

by 서 련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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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금) 05:24

내 어릴적 시골집은 마루가 넓었었다.
"ㄱ"자로 된 흙집 앞에 기둥을 세워 처마로부터 서까래를 길게 이어 붙이고 골함석을 마루의 지붕으로 씌웠었다.
골함석... 흔히 말하는 양철 지붕이 흙집 슬레이트 지붕밑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 해 여름 비바람에 몸살을 앓은 지붕은 간혹 서까래에서 떨어져 나와 그 어설픈 아가리를 떡하니 벌리곤 했다.
그럴때마다 바지런한 아버지는 작은 몸집을 이끌고 손수 사다리를 타고 양철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수리하곤 했다.
 
한 번 혹은 두어번 나는 그 지붕 수리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방수못?을 만드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헌 장판을 동그랗게 오려서 그 가운데로 나무 못을 끼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못으로 못질을 하면 지붕으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 뿐더러
얇은 양철판에서 못대가리가 빠지는 걸 방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양철 지붕위로 한 여름의 뙤악볕이 내리쬘때면 후끈후끈 그 열기가 정말로 대단 했었다.
한날은 갑작스레 소나기가 퍼부었었는데 그때 난 하필이면 양철지붕 아래서 허리를 굽혀 마루밑에 들어간
백구를 불러내고 있던 참이었다. 
 
말이 "백구"지 엄밀하게 따지면 누런 똥강아지 "황구"였다.
누가 어떤 경위로 그 누런 똥개에게 백구라는 이름을 붙여 줬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녀석을 부르기 전까지 난 마루에 앉아 하모니카의 양쪽 나사를 풀러서 분해를 하고 있었다.
하모니카가 너무 더러워져서 바깥쪽 안쪽 할 것 없이 깨끗한 천으로 닦으려고 깔끔을 떨고 있을때였는데
작은 너트나사 하나가 또르르 굴러가더니 마루 틈으로 쏙 빠지는 것이었다.
너트 나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고 마루틈 사이로 들여다 보니 마루밑으로 낮잠을 자고 있는 백구가 보였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녀석의 복부 위로 방금 굴러떨어진 너트나사도 함께 보였다.
 
녀석이 잠에서 깨어 몸부림을 치면 나사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마루 밑으로 살금살금 내려가 팔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백구 배 위에 있는 나사에 손이 닿으려는 순간! 이노무 개새끼가 깜짝 놀라더니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바람에 나사가 땅으로 떨어졌는지 어쨌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야이 개새끼야!"하고 소리를 꽥 질러 버렸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아서 한대 쥐어 박아야 직성이 풀리지 싶어서 백구를 불렀는데
눈치가 빤한 백구는 멀뚱히 앉아 다리털을 햝을 뿐 영 나올 생각을 안하는 거였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지려는지 먼 하늘로부터 비구름 한덩이가 몰려오고 있었고 
날은 습하고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저 노무 개쌔끼를...'하는 속마음을 애써 숨긴채
마루밑에서 꼼짝 않고 있는 백구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흘렸다.
손아귀에 녀석의 모가지가 들어오길 기다리면서
어린 나는 그 뜨겁게 달은 양철 지붕아래서 더운 줄도 모르고 허리 굽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마침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뜨겁게 달구어진 양철지붕위로 빗물을 뿌려댔고
빗물은 뜨겁게 달궈진 양철지붕의 열기를 흡수해 금방 뜨거운 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비로소 양철지붕위의 뜨거운 빗물은 백구를 향해 교활한 미소를 흘리던 내 등으로 쏟아졌고
어린 나는 또 한번 정체를 알수 없는 가해자에게 파르르하니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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