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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201152

머지않아 봄이 올 거야. 일터근처, 인적이 드문 거리엔 아직도 며칠전에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다. 추워도, 추워도 어떻게 이렇게 추운지 요즘은 생전 이렇게 추운 겨울이 없었던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날들이 많다. 그제보다 어제가 더 추웠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추운날들. 이대로 겨울인 채로 시간마저 얼어버리고 따뜻한 봄날이 끝끝내 오지 않으려나도 싶었다. 하지만 봄이 오려는 흔적은 의외의 곳에서 불쑥 나타나곤 한다. 퇴근길, 마트에 장을 보려고 들렀다가 습관적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던 귤 한망. 주황색 망속엔 어린아이 주먹만한 귤이 오종종하게 담겨 있었다. 식탁위에 장본 것들을 꺼내 놓다 말고 나는 귤을 오종종한 모양으로 오종종하게 담고 있는 주황색 망을 가위로 툭 잘라 귤하나를 집어 들고 까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귤.. 2011. 1. 26.
서른아홉의 반항 엎드려서 책을 본다.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었다.지지직거리는 소리를 FM채널에 맞추었을 때 세상은 가을인데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가 흘러나왔다.성문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먼지 쌓인 창틀을 닦아내거나 냉장고 안 촉이 떨어진 전등을 갈아끼우며 나는 그 노래를 들었다.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오늘 밤도 지나가네 모리수 밑을.가지는 흔드리며 말하는 것 같네,그대여,여기와서 안식을 찾으라. 전화선을 꽂고 머리를 감고 얼굴에 로션을 펴발랐다.『외딴방』,신경숙,문학동네,1999,111page - 책 속에서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와 소설속 그녀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있다. 문득 보리수가 어떤 음악이었던가 궁금해져 컴퓨터를 켰.. 2011. 1. 23.
정신 차려! 오늘은 토요일. 오전 10시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문득 정신을 차린다. 나는 어쩌다가 이 시간까지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는 게으른 처지가 되었을까?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아이 공부도 돌봐주고 그야말로 하루를 이틀처럼 살곤 했었는데... 어쩌다가... 바깥에서 하는 일이 생기면서 생활패턴이 달라졌다는 변명 하나. 바깥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잠으로밖에 풀수 없었다는 변명 둘. 바깥일과 집안일 외에도 끊임없이, 끈질기게 나만을 따라다니는 일이 많아 심신이 피곤하다는 변명 셋. 변명을 세개쯤 쓰고 나니 오전 10시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도 같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 모든 변명은 그야말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하고싶은 일이 .. 2011. 1. 23.
지우개 똥 오늘은 뭔가를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숱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둥둥둥 헤엄쳐 다니는 밤. 숱한 단어들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워도 단어는 문장이 되질 않는다. 이미 내 인생 깊숙히 스며들었지만 내 인생이 되질 못하고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당신처럼. - 뭐해? - 지우개똥 만들어... 생각에도 냄새라는 것이 있는지... 당신을 생각하는 밤이면 그는 귀신같이 냄새를 맡는다. 무심히 등 뒤를 스쳐가는 그의 눈빛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노트에 적었던 단어들을 지우고 또 지워서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지우개 똥을 정성껏 만들었다.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당신에게 사죄라도 하듯 그렇게. 201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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