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추억은 낙엽처럼/200855

꽃다지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2/03 (일) 13:53 어둡고 짙은 자주빛깔의 꽃다지가 노란 꽃을 피우기 일보직전이다. 늦가을 싹을 틔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차가운 들녘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을 꽃다지... 모진 시간 너무도 잘 견뎌냈을 생명은 꽃을 피우지 않았다 해도 그 자체로 하나의 꽃이었다. 자주빛의 고운 꽃... 2008년 2월2일 무심히 거닐던 남사 들녘에서... 2008. 2. 3.
고구마 싹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2/01 (금) 18:16 얼마전부터 고구마에서 빨갛게 돋아나던 싹이 어느 덧 줄기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작은 유리 어항에 담아 냉장고 위에 올려뒀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시간을 소급해가며 생각해보니 3개월 전이다. 고구마에 싹이 나기 시작한 것은 보름전쯤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싹도 없이 지낸 동안 고구마는 냉장고 위에서 뭘 했던 것일까? 따뜻한 날이 많았던 겨울동안 보일러는 게으름을 피웠고 실내온도는 22도를 넘지 않았다. 그 덕에 고구마는 아마 두어 달 남짓 동안 겨울 잠을 잘 수 있었나 보다. 이제 싹을 틔워 한창 봄을 누리고 있는 고구마 싹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 겨울 동안 무엇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택배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가 .. 2008. 2. 1.
머지않아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30 (수) 21:15 아이와 함께 나선 산책길,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고 햇살은 하늘로부터 눈부셨으나 열기가 없다. 무심코 눈을 돌린 그늘진 소나무 밑둥치엔 잔설이 하얗게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고 그 옆을 정신없이 오가던 청솔모의 손엔 등산객이 던져주고 갔을 법한 과자 부스러기가 들려있다. 경사가 사나운 비탈길에서 아이를 앞에 세우고 아이의 허리춤을 쥔 나는 아이를 밀며 숨가쁘게 정상에 올랐다. 그 곳에서도 바람은 매서웠고 하늘로 부터 쏟아지는 햇살은 여전히 열기가 없었다. 후두를 타고 허파로 몰려 들어간 매서운 바람이 탄산수처럼 가슴속을 짜르르하고 파고들 때 열기 없이 쏟아지던 햇살에서 향기가 날렸다. 저 멀리 산 너머 남녘으로 부터 밀려 왔을 법한 희미한 향기.. 2008. 1. 30.
고요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23 (수) 05:37 며칠간 눈은 쉴 새 없이 내렸으나 쌓이지는 않았다. 마른 땅을 뚫고 눈은 사라지고 두통같은 현실 위에 내려 앉은 새벽은 정적만이 고요하다. 고요하다. 2008. 1. 22.
뾰루지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16 (수) 10:12 왼쪽 볼에 7개, 오른 쪽 뺨에 2개, 모두 9개의 뾰로지를 면봉으로 짜 낸 후의 얼굴은 더 이상 얼굴일 수 없다. "얼굴이 왜 그래?" 뾰로지 자국으로 뒤덥힌 얼굴을 보며 그가 물었다. "죽을 때가 다 됐나 봐." 그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그의 딸이 내 다리를 붙잡으며 죽으면 안된다고 울부짓는다. "엄마가 농담한 거야 울지마 아가..."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 "병원에 좀 가 봐."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 연고 바르고 며칠 있으면 다 나아."라고 말했다. 다시 내 얼굴을 가만 들어다 보던 그가 말했다. "피부과 말고 내과..." 그래야 할까? 그래야 겠지? 그런데... 쪼매 겁난다. 2008. 1. 16.
갇히다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28 (월) 13:10 신랑이 출근하기 직전에 누군가 현관문을 열심히 두드렸다. 현관문이 열리자 말자 윗층 할아버지가 불쑥 열쇠를 건네주면서 "새댁, 내가 우리 애보다 집에 늦게 올것 같아서 그러는데 열쇠 좀 맡아 줘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얼결에 "예, 그럴게요 할아버지." 라고 대답하고는 열쇠를 받아 두긴 했는데... 아이랑 산책을 가려다가 생각해보니 윗층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그 "애"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 오후에 돌아 올지 아니면 늦은 오후에 돌아 올지, 그것도 아니면 저녁 늦게야 돌아 올지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물어 봤다면 무턱대고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지... 얼결에 나는 집에 갇히고 말았다. 에히... 미련 곰탱.. 2008. 1. 8.
발크레시티 생을 향한 속삭임 2008/01/08 (화) 20:58 대형 롤 화장지의 심지 4개를 이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하나 더 얹어 몸통을 만든 다음 치약 상자 두개로 팔을 만들고 풍선으로 머리를 만든 로보트가 있었다. 아이가 재활용 쓰레기로 손수 만든 로보트는 '발크레시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발크레시티는 투명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여 놓아 옮길 때마다 팔다리가 한번씩 떨어져 나갔다. 그럴때마다 아이는 "걱정마, 발크레시티, 내가 안아프게 붙여 줄게." 하며 투명테이프를 찾아 정성껏 붙여 놓는 것이다. 주산공부를 하러 학교에 갈때에도, 논술공부를 하러 학교에 갈때에도, 아이는 "엄마, 발크레시티 버리면 안 돼?" 하며 내게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돌아 올 동안 주로 청소를.. 2008. 1. 8.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