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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낙엽처럼509

고기보다 비싼 청양고추 매콤한 청양고추를 쌈장에 콕 찍어서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트에 들렀다. 마침 싱싱하고 맛있게 매워 보이는, 물 좋은 청양고추가 보였다. 나는 길쭉하고 날씬한 청양고추 15개를 비닐봉지에 골라 담고 마트 직원에게 가격표를 찍어 달라고 했다. 마트 직원은 청양고추가 든 비닐봉지를 저울에 올리더니 가격표를 인출해서 청양고추봉지에 붙인 다음 다시 나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청양고추 15개가 4,200원이라니! 100g에 2,500원? 헉! 고기보다 비싸다! 유난히 추운 겨울, 온실에서 비싼 기름 많이 먹고 자란 농작물이어서 그렇겠구나...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하긴 며칠 전에 시골집에 등유를 넣는데도 돈이 많이 들었다. 예전엔 등유 .. 2023. 2. 22.
2007년, 그 해 여름과 겨울 2007년 12월 8일 남사 들녘.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 주시다 혼자 신이 나셨고 아이는 털부츠에 풀씨가 붙었다고 칭얼거렸다. 아이 아빠는 딸아이 털부츠에 붙은 풀씨를 떼느라 쭈그리고 앉아있다. 15년 전, 시골집 들녘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평화로운 한 때였다. 또한 되돌릴 수 없는 한 때이기도 하다.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한 때를 지나 현재에 머물러 있다. 이 현재 또한 지나는 것이어서 머무르다는 표현은 이치에 맞지 않겠다. 지나는 것, 지나가는 것. 우리는 모두 그 과정 속에 잠시 머물러 있을 뿐 영원할 수 없다. 영원할 수 없기에 모든 지나간 것은 아쉬움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 것일까? 선산 제각에서 아버지의 4.. 2023. 2. 15.
정리벽이 도졌다. 정리벽이 도졌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마주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집안의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캐캐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랍 속 자질구래한 물건들을 정리했다. 빨래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가지런히 개어 놓고 속옷을 들고 늘 가던 대로 갔다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속옷을 넣어두던 서랍장을 어디로 옮겼을까? 싱크대 오른쪽에 있던 냉장고를 왼쪽으로 옮겨놓고 자꾸만 싱크대 오른쪽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냉장고는 없었다. 새로운 자리에 배치된 세간들의 위치에 익숙해지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남편의 몸은 아직도 싱크대 오른쪽에 있던 냉장고를 기억한다.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지 모르겠네?" 그렇듯 습관은 무섭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연휴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이게 전부다. 몸이 .. 2023. 1. 25.
2012년 4월 27일 덕암산 정상/생각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 "생각이 모든 것을 창조한다."라는 존 아사라프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하루 동안 무의식적으로 떠 올리는 생각이 수 만 가지나 된 다한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그 수 만 가지 생각을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일괄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창조적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파일함을 뒤져 11년 전 사진을 꺼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생각이다. 기억을 생생히 떠올려주는 사진이나 일기 같은 기록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오늘하루 오만가지 생각의 끝에는 11년 전의 어떤 기억들이 자리하고 있다. 덕암산 정상에 세워진 비석 사진을 꺼내 놓고 보니 유쾌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샘솟았다. 그간 추웠다. 날씨도 춥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도 너무 추웠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분 좋은 .. 2023. 1. 8.
無로 돌아 가다. 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아버님 고향 선산, 굳게 닫혀 있던 崇祖堂 돌문이 열렸다. 한 줌의 재가 된 고인을 그곳에 모시고 돌아왔다. 요양원으로 들어가신지 1년 남짓, 다들 요양원 바라지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던데 우리 아버님은 뭐가 그리 급하셨던지 혼자서 먼먼 길을 가셨다. 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지난 주에 담은 배추김치와 열무김치가 베란다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잘게 다져서 아버님 가져다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김치 가져다 드릴 아버님이 없음을 깨닫고 허무해졌다. 남편 역시 순간순간 아버지의 不在를 인지하는지 빨간 토끼눈을 하고 말이 없다. 그 말 많던 양반이 "우리 아부지 ㅠㅠ, 우리 아부지 ㅠㅠ..." 소리밖에 내지 않는다. 그래..... 2022. 12. 30.
휴일은 피곤해. 금요일.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배추 한 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담근 배추김치가 벌써 떨어질 때가 되었나 보다. 김치 귀신 남편께서 친히 배추를 사다 놓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 오려면 좀 많이 사 올 것이지 달랑 세 포기가 뭐냐며 물었더니 나 힘들까 봐 한 망만 샀다는 것이다. 힘들까 봐? 쳇, 그럼 배추가 아니라 김치를 사 왔어야지. 고양이 쥐 생각하는 마음으로 배추를 사다 놓은 남편은 배추 살 때 보니 열무도 싱싱한 게 좋아 보이더라 했다. 열무김치도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소심하게 던져 놓은 배추 한 망은 열무 다섯 단과 배추 한 망을 더 불러들였다.(끌어당김의 법칙의 잘못된 예) 토요일. 아침부터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다. 남편은 내가 배추를 절이는 내내 옆 자.. 2022. 12. 26.
겨울이 깊어질수록 따뜻함도 깊어지겠다. 연일 최저 기온을 갱신하며 겨울이 겨울다워지고 있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다운 코트를 입고도 춥다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겠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집안은 따뜻하다. 퇴근 후 따뜻한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저녁을 먹고 오늘 분량의 집안일을 끝낸다. 그리고 따뜻한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순칠 교수의 《퀀텀의 세계》를 읽는다. 양자 역학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하지만 알아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양자의 세계...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오늘 분량의 책을 다 읽었으니 이젠 따뜻하게 잘 시간이다. 겨울다운 겨울 때문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한 오늘이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따뜻함도 깊어지겠다. 2022. 12. 19.
집으로 오는 길,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오늘도 종일 눈이 왔다. 하루 종일 일은 뒷전이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만 바라보았다. 하얀 눈의 낭만? 뭐 이딴 걸 생각하느라 그런 건 아니었고 당장 퇴근해서 집에 갈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4시가 지날 무렵 눈발이 점점 거세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하던 일을 팽개치고 조기 퇴근을 했다. 길이 얼기 전에 얼른 집으로 가는 게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려면 먼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자동차를 구해 줘야 한다. 나는 트렁크에 실린 고무 밀대를 꺼내 자동차에 소복히 쌓인 눈을 재빠르게 밀어내고 거북이 주행을 시작했다. 느릿느릿 20분을 달렸을까? 갑자기 길이 너무 밀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미끄럼 사고가 난 것 같았다. 눈은 펑펑 쏟아지고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길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출.. 2022. 12. 15.
이번 겨울은 눈이 많이 오려나? 아침부터 눈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눈이 내리자마자 녹아버려서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눈이 많이 왔다. 거의 폭설 수준으로 쏟아졌다. 사이드 미러에 눈이 쌓여 운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자동차 뒤창에도 눈이 쌓여 룸미러가 무용지물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왼쪽 사이드 미러만 닦아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첫눈 오던 날도 출근 시간에 맞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하얀 벌판을 거북이 주행으로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려나 보다. 밤 새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내일도 일찌감치 출근길에 올라 거북이 주행으로 엉금엉금 출근을 해야겠다. 지금은 밤 9시. 오후 6시면 온다던 택배가 밤 9시가 되어서 도착을 했다. 하루 종일 눈 쌓인 .. 2022. 12. 13.
다육식물 - 까라솔/적심 시골집에서 키우던 다육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추위에 약한 식물이 온기가 없는 시골집에서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까라솔은 1년 사이 몸집이 세배나 불었는데 옮기는 과정에서 상처가 많이 났다. 까라솔은 조심히 다뤄야 하는 식물이다. 잎과 잎이 서로 부딪히는 부분은 까맣게 변하고 조금 과하게 눌렸다 싶으면 여지없이 까맣게 멍이 든다.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했는데 여기저기 멍이 들었다. 곁가지도 하나 부러져 나갔다. 내 실수였다.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반찬통을 하필이면 까라솔 위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름다운 꽃송이 하나가 그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댕강 부러진 것이다. 가운뎃 기둥을 중심으로 곁가지 5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날아든 플라스틱 통 때문.. 2022. 12. 10.
이중적인 잣대 내일부터 춥다더니 밤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문득 그저께 낮에 보았던 민들레가 생각났다. 그 동안 큰 추위가 없던 탓에 철도 모르고 피어있었다. 이젠 겨울이다. 추운게 당연한 겨울. 철 없이 민들레가 피었다고 겨울이 봄이 되진 않는다. 추운 건 싫지만 겨울은 겨울 답게 추워야 한다. 종일 날이 스산했다. 눈이나 펑펑 왔으면 좋겠다는 동료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눈이 오면 출근하기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현실은 늘 이중적이다. 아니,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잣대가 이중적이다. 2022. 11. 30.
자기 일에 집중하는 아름다움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가 가는 병원은 검강검진 예약을 받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혹시나 규정이 변경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었다. "예약 안 하셔도 되구요, 10시간 공복 상태로 나오세요." 친절한 목소리가 끊기고 문자 한 통이 왔다. 병원 진료시간 안내가 담긴 문자였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그 병원은 유독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자꾸 미루고 뜸을 들였다. 아마도 내 무의식이 병원을 싫어해서 생긴 일이었나 보다. 병원의 친절한 응대는 병원에 가기 싫다며 잠들어 있던 내 무의식을 살살 흔들어 깨워줬다. 일.. 202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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